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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학과 대학생모임 무료진료 봉사활동 40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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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할머니 약 매일 드셨어요?" "어디 갔다 오느라 엊그제 딱 하루 못 먹었는데…. " "그러시면 안돼요. 할머니, 고혈압 약은 매일 꼬박꼬박 잘 드셔야 돼요. "

21일 오후 3시 서울노원구상계동 북부종합사회복지관 3층. 혈압을 재던 흰 가운의 젊은이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할머니를 탓하자 할머니는 금세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가족처럼 웃는 얼굴로 약을 처방하는 젊은이에게 할머니는 고맙다는 말을 수차례 반복하며 자리를 물러났다.

노란 진료카드를 손에 쥐고 순서를 기다리는 할아버지.할머니 20여명에게 건강상담을 해주고 약 처방 외에 침을 놔주기도 하는 30여명의 '선생님' 들은 의대 재학생들과 의사들.

매주 토요일 생활보호대상자를 상대로 이곳에서 무료진료 봉사활동을 벌이고 있는 이들은 '생명경외클럽 (회장 朴건보.연세대의대 3년)' 회원들. 지난 84년 판자촌이 즐비했던 이곳에서 무료진료를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15년동안 한번도 진료를 거른 적이 없다.

이 모임은 생명의 존귀함을 일깨우기 위해 일생을 흑인들을 위한 진료봉사에 헌신함으로써 몸소 사랑을 실천한 슈바이처 박사의 생명경외사상을 본받기 위해 지난 58년 창립됐다.

당시 가톨릭.고려.이화여.연세.서울대의 의학.치의학.약학.간호학.수의학과 재학생들로 출발했던 이 모임에는 지난해 경희대 한의학과 학생들도 합류했다.

창립 첫해인 지난 58년 9월 경기도화성군반월면 무의촌에서 진료봉사를 시작해 지난 84년부터 이곳으로 자리를 옮겨 정기진료를 계속하고 있다.

클럽 회원은 졸업생 7백여명과 재학생 80여명. 이들중엔 국내외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명의들도 많다. 연세대 김병수(金炳洙)총장은 61년 클럽에서 활동했고, 창립 멤버였던 전성균씨는 현재 미국 미네소타대 이비인후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이들이 벌이는 토요무료진료에는 재학생뿐 아니라 현직 의사로 활동하고 있는 졸업생들이 동참, 후배들에게 살아있는 의학 지식도 전수한다. 이 클럽 회원들은 여름과 겨울방학을 이용해 무의촌 지역으로 장기진료를 떠나기도 한다. 지난 7월에는 경북영양군정기면을 찾았다.

모든 활동 경비는 졸업생들의 후원금과 회원들의 회비로 충당된다.

2년째 봉사활동을 해온 田태두(24.서울대치대 본과3년)씨는 "처음에는 그저 환자들에게 약을 주고 온다는 느낌뿐이었다. 하지만 슈바이처 박사의 사상을 함께 공부하며 직접 봉사활동에 참여하게 되면서 사람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계기가 됐다" 고 말했다.

생명경외클럽 회원들은 22일 오후 5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창립 40주년 기념잔치를 열고 선배에서 후배로 면면히 이어져온 인술 (仁術) 베풀기의 전통을 재확인한다.

김성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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