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포럼]경제재건,10년은 각오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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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표범의 논리' (logic of leopard) 라는 것이 있다.

어느 이탈리아 작가의 소설 '표범' 에서 유래한다.

'현상태를 보존하기 위해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는 행위' 다.

뭔가 달라지고, 더 발전하기 위한 변화가 아니고, 기득권이나 현재의 우위 등 '본래상태' 로 계속 살아남기 위한 변화의 발버둥이다.

우리 경제가 국제통화기금 (IMF) 관리체제 아래 들어간지 벌써 1년이다.

그동안 실로 많은 것이 변했다.

소득수준이 10년 전으로 후퇴하면서 기업과 금융기관들이 쓰러지고 그 과정에서 실업자들이 거리로 쏟아졌다.

고속성장의 거품이 급속히 붕괴되는 과정이었다.

과거의 반성을 바탕으로 경제의 밑그림을 새로 그리고 틀을 세우는 작업이 구조조정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의 구조조정은 어느 부문을 막론하고 기구를 축소 내지 통폐합하고, 사람을 줄이는 다운사이징이 고작이었다.

핵심부문에 역량을 결집시켜 내일을 설계하고 준비하는 리스트럭처링과는 거리가 멀다.

공공부문의 '철밥통' , 대기업들의 마지 못한 구조조정은 한마디로 '현상고착형' 다운사이징이다.

많은 것이 부산하게 변하는 것 같지만 본질에 있어 한발짝도 진전이 없는 그런 변화다.

새로운 가치와 새 일자리들이 창출되기는 커녕 성장의 기회는 사라지고 실업은 더욱 증가한다.

이런 점에서 지난 IMF 1년은 허송세월이었다.

우리 경제위기의 본질은 외환위기가 아니라 경쟁력의 위기다.

선진기술을 들여와 조립.가공하고 적당히 모방해 수출을 통해 성장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이런 성장은 후발국들, 특히 중국 등 옛 사회주의국가들이 더 잘 한다.

우리의 임금수준은 중국의 다섯배다.

그동안 엔고 (高) 등 바깥의 호재들에 이런 취약점들이 가려져 왔을 뿐이다.

김영삼 (金泳三) 정부의 세계화로 수입과 외화소비가 폭증하면서 경상수지는 크게 구멍나기 시작했다.

이 구멍을 외국 자본이 메워 왔고 이 단기성 외자가 갑자기 빠져나가면서 외환위기가 닥쳤다.

결국 IMF가 급한 불을 꺼주었다.

단기성 외자를 죄악시하고 IMF를 규탄하는 것은 적어도 우리에게는 누워 침뱉기다.

구조조정을 제대로 하려면 먼저 경쟁의 틀과 게임의 룰을 바꿔야 한다.

국내 동종기업들간의 도토리 키재기식 경쟁은 서로 피곤만 하고 소모적이다.

자기가 속한 산업의 환경변화를 남보다 먼저 읽고 시장이 원하는 것을 생산기술.마케팅에 반영해 고객에게 남보다 먼저 제공하는 능력이 경쟁력이고 혁신이다.

'경쟁업체들 때문에 내가 죽는다' 가 아니고 필요에 따라 '적과의 동침' 으로 함께 사는 것이 전략적 제휴다.

일자리 종류는 우리가 1만3천개인데 비해 미국은 4만3천개다.

구조조정에도 선진기술 도입이 필요하다.

둘째가 글로벌 경영전략이다.

해외에 지사나 현지법인을 두고, 고임금을 피해 해외공장을 운영하는 것은 '국제화' 지 글로벌 경영은 아니다.

경쟁환경을 국경을 초월해 지구촌 단위로 인식하는 경영이다.

어느 나라에 가서나 자기 나라에서 기업하듯 하고, 외국인들도 한국에 와 자기 나라에서처럼 자유롭게 기업활동을 하는 방식이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게임의 룰을 받아들이고 실천해야 한다.

선진국에 시장을 내주는 것이 글로벌화라는 비난도 쏟아지지만 이 미래의 파도를 막을 방파제는 없다.파도타기에 익숙해져야 살아남는다.

셋째 핵심역량은 창의력과 전략적 지혜, 그리고 위험을 무릅쓰는 용기다.

이 능력배양에는 교육혁신과 마음을 여는 의식개혁이 필수적이다.

불확실성 속에 다가올 추세를 예감하고 이를 형상화하는 사회적 능력은 1~2년에 안된다.

대만은 인구 18명당 기업이 한개꼴이다.

'아메바' 기업으로 자처한다.

원래의 모양이 없고 환경변화와 시장의 주문에 따라 부단히 자신을 변화시킨다.

세계 컴퓨터시장의 부품공급은 대만이 거의 석권했다.

소프트웨어는 인도 뱅골의 실리콘 밸리가, 이스라엘은 첨단산업의 기술기지로 떠올랐다.

구조조정한답시고 연구단지가 공동화 (空洞化) 하고, 기업의 연구개발 투자가 줄고, 과학기술의 꿈나무들이 병역혜택에 묶여 우물안 개구리식 국내 학위에 연연하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미국의 구조조정은 14년이 걸렸다.

일본은 거품붕괴후 올해가 8년째, 최근 아사히 (朝日) 신문은 '앞으로 5년은 각오하자' 고 사설로 역설했다.

1년만에 IMF로부터 '주권회복' 운운하며 낙관을 부추기는 것은 웃기는 일이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은 지금부터다.

적어도 한 10년은 우리 모두 단단히 각오해야 한다.

변상근(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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