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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를 잡아라”미·일·중 주도권 경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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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미.일.중 3국이 비틀거리는 아시아를 놓고 주도권 싸움을 벌이고 있다.

무기는 돈이고, 명분은 경제위기 해소다.

미국과 일본이 16일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아시아 국가들을 위해 1백억달러를 내놓겠다고 밝힌 다음날 중국도 홍콩 특별행정구가 부담하는 10억달러를 포함, 55억달러를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중국 외교부는 17일 정례 언론 브리핑에서 "아시아 금융위기의 악화를 막고 위기 탈출을 돕기 위해 취한 중요한 기여" 라고 지원배경을 설명했다.

55억달러는 앞으로 국제통화기금 (IMF) 이나 양국간 채널을 통해 지원될 예정이다.

전날 미국과 일본은 미국이 독자적으로 제공하는 50억달러와 일본.세계은행.아시아개발은행 (ADB) 이 공동 지원하는 50억달러 등 총 1백억달러를 아시아지역에 투입하겠다고 약속했었다.

앨 고어 미 부통령은 "아시아 국가들의 금융위기 회복과 구조조정 촉진에 도움이 될 것" 이라고 말했다.

일본은 이미 지난달초 3백억달러 규모의 아시아 지원계획을 담은 '신 미야자와 (일 대장상) 플랜' 을 발표한 바 있다.

3국별 지원금액을 보면 단연 일본이 두드러진다.

아시아 금융위기에 대한 '원죄론' 을 제기해온 미국에 등을 떼밀린 측면도 있지만 일 정부가 추진중인 엔 국제화, 나아가 '엔 동맹권 구상' 을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이 많다.

일본은 3백억달러를 기초로 '아시아통화기금 (AMF)' 같은 국제기구 추진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 계획은 이미 지난해 일본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반대로 보기좋게 무산됐으나 일 정부는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그동안 일본이 아시아를 장악하더라도 시장개방을 밀어붙여 일본을 휘어잡으면 된다는 현실적인 전략으로 임해왔다.

그러나 아시아 경제위기 이후 이 지역에서 미국식 시장경제에 대한 불신과 반감이 높아지는 현실을 감안, 이번에 50억달러를 내놓은 것으로 해석된다.

이렇듯 미.일은 오래전부터 아시아를 놓고 미묘한 신경전을 벌여왔는데 세계 최대의 잠재시장인 중국이 "경제위기 확산과 심각했던 홍수피해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지원결정을 내린 것은 자기 희생적 측면이 강하다" 고 치고 나오면서 아시아 주도권 싸움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는 느낌이다.

여기에 대만도 끼어들었다.

비록 적은 돈 (약 3억달러) 이긴 하지만 자체적으로 아시아를 돕겠다고 17일 제안한 것. 대만 대표로 아태경제협력체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장빙쿤 (江丙坤) 행정원 경제건설위원회 주임위원은 성명에서 "ADB 회원국으로서 다자간 제의에 적극 참여할 의사가 있다" 고 말했다.

이에 대해 주방짜오 (朱邦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대만도 아시아 지원에 기여할 수는 있지만 이는 오직 비정부 채널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 이라며 독립국가로서 나서려는 대만에 분명한 메시지를 띄웠다.

심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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