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가난한 예술가를 위한 열린 전시공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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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낙동강변의 고즈넉한 농촌인 경남 창원시 대산면 유등리에 자리잡은 대산미술관. 한국서예대전 초대작가인 윤판기(48)씨의 서예전이 지난 1일 이곳에서 개막해 한달 예정으로 열리고 있다. 이 전시회는 대산미술관장인 김철수(51.창원전문대 실내건축디자인 교수.(右))씨와 부인 김연실(47.밀양 동명고 교사.(左))씨가 자비로 마련한 행사다.

이들은 1999년 1월 미술관을 개관한 이래 자신들이 모든 경비를 부담하는 무료 전시회만 열고 있다. 전시회를 한번 열면 현수막과 팸플릿 제작비, 전기료, 다과회 비용 등 400여만원이 들어간다. 이번 전시회가 27회째니까 지금껏 1억여원을 털어넣은 셈이다.

김 교수가 무료 전시회를 고집하는 것은 화가였던 큰형 김홍(79년 사망)씨의 유언 때문이다. 가난 때문에 대학(홍익대 미대)을 중퇴하고, 전시회 한번 제대로 열지 못했던 형은 술만 마시다 43세의 젊은 나이에 숨졌다. 형은 당시 차고 있던 손목시계를 풀어주면서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불우한 화가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해달라"고 말했다. 형이 그린 그림을 판 돈으로 어렵게 학업을 마칠 수 있었던 김 교수는 이 유언을 가슴깊이 새겼다.

생활에 여유를 찾아가던 98년 9월, 김 교수는 현재의 미술관 자리에 있던 부도난 라면 수프공장(600평)이 경매로 나온 것을 낙찰받았다. 5개월여의 보수작업 끝에 미술관으로 개조했고, 창원 시내의 아파트를 팔아 아예 미술관 옆에 새로 집을 지었다. 이후 김 교수 부부는'전시회를 열고 싶지만 비용이 부담스러운' 화가.서예가를 찾아다니고 있다. 현수막 제작과 팸플릿 디자인 및 발송, 그리고 개막일 다과 준비에 이르기까지 모두 무료로 해준다. 지금까지 미술관을 다녀간 사람들은 1만여명. 이들은 먼저 이런 한적한 농촌에 미술관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다음으로 무료 전시회의 의미를 알고는 숙연해진다. 김 교수는 "형을 생각하고 시작한 일이지만 덤으로 예술을 좋아하고 욕심없이 사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창원=김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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