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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1년]5.열어젖힌 빗장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한국계 미국 시민권자인 Y사장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10여년 전에 외국투자법인으로 국내에 설립된 M디자인사를 경영하고 있는 그는 자기 회사에 그동안 월급 등을 모아 저축해온 자금을 투자하려 했다.

그러나 Y사장의 희망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현행법상 불가능했기 때문. 재정경제부 담당자의 설명에 따르면 재원이 월급인 경우에는 직접투자를 할 수 없고 역외시장으로 한번 유출됐다가 다시 유입되는 경우에만 외국인투자로 간주해 혜택을 부여할 수 있다는 것.

그러나 Y사장은 최근 한국에 외자유치를 위한 적극적인 정책들이 잇따라 도입되면서 관련법들이 많이 바뀌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해당관청을 찾았지만 낙담속에 다시 발길을 돌려야 했다.

17일부터 발효될 새 '외국인투자촉진법' 에서도 외국인이 국내에서 받은 용역의 대가 등은 적용법규가 없어 직접투자의 목적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설명 때문이었다.

독일계 제조업체 B사의 K대표는 아직도 다른 외국인 거주자와 마찬가지로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매년 체류연장을 하는 번거로운 절차를 겪고 있다.

현행 규정상 위임받은 대리인이 대신 연장수속을 밟을 수 있게 돼 있지만 직접 출두를 요구받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K씨는 특히 본인 직접출두도 일정한 원칙이나 규정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담당 직원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꼬집었다.

게다가 서류도 복잡하기 짝이 없다.

주재원일 경우 재직증명서, 사업계획서, 소득세 납부증명서, 신원증명서에다 영업자금 도입실적증명서 등 대여섯가지는 기본이고 정상적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별도로 사무소임대계약서, 전화사용 내역서 등까지 요구하고 있다.

특히 담당직원들마다 자의적인 판단으로 수시로 새로운 요구사항을 제기하기도 한다며 K대표는 고개를 내저었다.

법무부가 마련한 출입국관리법 시행규칙 관련규정의 유의사항이란 항목에 따르면 '첨부서류중 분량이 많은 서류는 이를 발췌하여 사용하게 하는 등으로 필요없는 서류를 제출하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한다' 고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관련법규는 그럴싸하지만 일선 창구의 벽은 여전히 높기만 하다.

한국 기업의 투명성 부족도 또 다른 투자장벽으로 지적된다.

한국 투자를 모색하는 상당수 외국 기업들이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KOTRA) 등 상담부서에 "회계장부를 보증해줄 수 있는가" 를 자주 문의해오고 있다.

부외 (簿外) 거래가 다반사라 장부만 들여다봐서는 속내용을 알 수 없다는 불신이 깔려 있다.

한 외국인 투자자는 "지금 상황에서는 외국인의 대규모 투자를 기대하긴 힘들다" 면서 "기업에 투자하기 위해선 사업실적과 회계장부에 의존하게 되는데 한국 기업은 도대체 믿을 수가 없다" 고 꼬집었다.

또 다른 외국기업 대표도 "국제통화기금 (IMF) 체제 이후 한국 기업의 잘못된 관행은 아직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면서 "투자자들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의 한국 기업 실상을 알고 싶어 한다" 고 지적했다.

외국계 은행의 한 투자분석가는 "외국 투자자들의 불신을 씻고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시급하다" 면서 "그러나 이 점에서 한국 기업들은 아직도 갈 길이 너무 멀다" 고 평가했다.

유권하.표재용 기자

<도움말 주신분>

미국상공회의소 제프리 존스 회장.ABN암로은행 투자분석가 조지 가운드리.한독상공회의소 플로리안 슈프너 사무총장.BMW코리아 카르스텐 엥겔 사장.베르텔스만코리아 타힐 후세인 대표.메릴린치 인터내셔널 김헌수 이사.ING베어링증권 크리스 가드너 차장.ICI코리아 대표 게리 피셔.국회의원 김민석.KOTRA 외국인 투자지원센터 김강연 팀장.한국외국기업협회 이상열 전무.에델만코리아 이태하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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