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일본 휩쓰는 미국 상품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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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미국 상품이 일본시장을 휘젓고 있다.

그 결과 올해 일본내 히트상품은 태평양을 건너온 미제가 석권한 반면 일제는 귀퉁이로 밀리고 말았다.

"일제가 아니면 일본시장에서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는 신화가 무너져 내리고 있다. 시장개방과 디플레이션이 일본시장 판도를 이같이 뒤집어 놓고 있는 것이다.

니혼게이자이 (日本經濟) 신문이 발행하는 정보잡지 트렌디 12월호가 선정한 올해 일본시장 히트상품 베스트 30에 따르면 미국 영화인 타이타닉이 정상에 올랐다.

이 영화는 일본 사상 최고인 1천6백만명의 관객을 동원해 선풍을 일으켰으며 비디오와 CD 등 관련 제품도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도쿄 로열호텔에서는 주인공들이 영화에서 먹은 것과 똑같은 메뉴를 개발, 2만5천인분을 파는 재미를 보기도 했다.

2위 역시 지난 여름 출시된 미국 애플 컴퓨터의 아이맥 (iMAC) 이 차지했다.

기존 IBM 기종보다 저렴한 가격 (17만8천엔)에다 간편한 조작과 세련된 디자인이 호평을 받아 한달만에 4만대가 팔려나갔다.

일제 컴퓨터로는 소니의 노트북 컴퓨터인 바이오 505가 6위에 머물렀을 뿐이다.

히트상품 3위는 외화표시 예금. 지난 4월 외환거래가 자유화되면서 초 저금리와 엔 약세에 염증을 느낀 일본 자금이 대거 달러표시 금융자산으로 몰렸다.

도쿄 미쓰비시은행의 경우 6개월만에 외화예금 계좌가 4배나 늘었다.

지난해 트렌디가 선정한 히트상품 순위를 보면 ▶1위가 전자 애완용동물 게임기인 다마곳치 ▶2위가 당시까지 최대 관객을 동원했던 만화영화 원령공주 (もののけ姬) ▶3위는 중년의 불륜을 다룬 영화 실락원이었다.

10위내에 든 해외 아이템은 미국의 골프신동 타이거 우즈가 유일했다.

트렌디는 1년만에 미국 제품이 히트상품 상위를 휩쓴 것에 대해 "미.일간 경제 실력차를 그대로 드러낸 것" 이라고 평했다.

창의력에서 미제가 앞섰다는 자인이다.

올해 일본업체가 내놓은 히트상품은 불황과 소비위축을 감안해 내놓은 가격파괴형이 대부분. 일본 맥도널드는 기존 가격의 절반인 65엔짜리 햄버거로 전년 동기보다 매출을 10배나 끌어올려 8위에 올랐다.

도쿄전화도 '3분에 10엔' 으로 굳어졌던 시내통화 요금을 '9엔' 으로 낮춰 1백50만회선의 신규계약을 올렸다 (10위) . 히트상품 하나로 기사회생한 대표적인 회사는 기린맥주. 지난 3년간 아사히맥주의 슈퍼 드라이에 눌려 맥을 못추다가 올해 저가 발포주인 '기린 단레이' 를 출시, 10개월동안 10억병을 파는 기염을 토했다.

덕분에 올해 히트상품 4위에 오르며 맥주시장 점유율 1위도 회복했다.

도쿄 = 이철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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