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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원로 방송작가 한운사씨 별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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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원로 방송작가이자 한국방송작가협회 고문인 한운사(사진)씨가 11일 오전 7시 서울아산병원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86세.

고인은 1946년 서울대 불문과 재학 시절 방송작가로 데뷔해 지난 60년간 한국 방송드라마에 큰 족적을 남겼다. TV드라마 외에도 라디오드라마, 영화시나리오, 장편소설 등 전방위에서 100여 편의 작품을 쓴 작가로, 방송작가의 대부로 불려왔다. 새마을운동가 ‘잘 살아보세’의 작사가이자 영화 ‘빨간 마후라’의 원작자, 대중가요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의 작사가이기도 하다.

23년 충북 괴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일본 주오대학과 경성대학 예과를 거쳐, 서울대 재학중 방송과 인연을 맺었다. 54년 한국일보에 입사, 문화부장을 지냈고 1957년 정식으로 방송계에 진출했다. 그의 첫 장편소설이자 영화로도 만들어진 드라마 ‘이 생명 다하도록’이 공식 데뷔작이다. 이어 ‘현해탄은 알고 있다’(1960) ‘아낌없이 주련다’(1962), ‘남과 북’(1965), ‘서울이여 안녕’(1971) 등이 방송과 영화로 빅히트를 쳤다. 라디오 드라마로 시작한 ‘현해탄은 알고 있다’는 방송 시간이 되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모두 라디오 전파사 앞으로 모여들어 귀기울일 정도로 인기를 누렸다.

다작을 했음에도 그의 드라마는 가볍고 오락적이기보다 묵직한 주제의식을 담았다. 일제강점기에서 해방, 한국전쟁, 이승만정권을 겪은 작가의 체험을 바탕으로 사회와 인간에 대한 작품들을 썼다. 북한에 대한 사회적 발언이 금기시된 상황에서 이산가족과 분단의 문제를 그린 ‘남과 북’, 대통령 전속 이발사의 시점을 빌린 정치풍자극 ‘잘 돼갑니다’, 스위스 레만호에서 남한 외교관이 북한의 옛 애인을 만나는 ‘레만호에 지다’, 한때 불온시비를 불러일으킨 ‘이 생명 다하도록’ 등은 적잖은 파장과 함께 작가에게 정치적 고초도 안겼다.

그는 대종상과 청룡상 각본상(‘남과북’), KBS 방송대상, 한국방송작가상 특별상(2006) 등을 수상했으며, 2002년에는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에 의해 방송인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유족으로는 한만원(건축가)·도원(디자이너)·중원(사업)·상원(호원대 실용음악과 교수) 4남이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발인은 14일 오전. 02-3010-2230.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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