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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봤습니다] ‘그 좋은’ 컴퓨터를 버렸다, 더 좋은 친구들이 생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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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 내내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는 자녀를 보며 부모는 할 말을 잃었다. “인터넷 그만 해라.” “조금만 더요.” 다툼도 하루 이틀이지, 매일 쏟아내야 하는 잔소리에 부모가 먼저 지친다. 인터넷으로 인한 자녀와의 전쟁이 쉬 끝날 것 같지 않아 부모는 두렵다. 어떻게 하면 인터넷이란 괴물 아닌 괴물로부터 아이를 떼어놓을 수 있을까. 방학을 이용해 ‘인터넷 파라다이스’에 빠져 사는 아이에게 그만큼의 재미를 줄 수 있는 다른 ‘놀거리’를 찾아줘야 한다.

지난달 23일 오후 1시 제부도 갯벌체험장. 썰물로 속살을 드러낸 갯벌에 남녀 중학생들과 지도교사가 호미와 괭이를 들고 뛰어들었다. “선생님, 낙지예요. 제가 잡았어요.” 한 남학생이 손가락만 한 낙지 한 마리를 들어 보이며 신이 난 목소리다. “그걸로 저녁에 연포탕 끓여 먹으면 힘이 나겠네.” 지도교사도 웃으며 학생의 흥을 돋웠다.

갯벌에 들어간 지 10여 분. 학생들의 얼굴과 옷은 벌써 진흙투성이다. 이들은 옹기종기 모여 조개며 게, 낙지를 캐느라 뜨거운 여름 햇살도 잠시 잊었다. 모래사장에는 친구들의 모습을 우두커니 앉아 지켜보는 학생도 있다. “왜 갯벌에 안 들어가느냐”고 물으니 “귀찮다”고 짧게 답했다.

인터넷 없는 사흘 “괜찮아요”

이들은 2박3일 일정으로 캠프에 참가했다. 갯벌 체험을 한 날은 캠프 둘째 날. 해상레포츠나 보드게임, 공동체놀이 같은 프로그램만 봐서는 여느 캠프와 다를 것이 없다. 하지만 참가자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인터넷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한국정보화진흥원 인터넷중독예방상담센터가 운영하는 ‘인터넷쉼터캠프’다. 여름방학 동안 총 5회에 걸쳐 전국에서 무료로 진행됐다. 방학 동안 인터넷 사용을 줄이고, 대안활동 경험을 하자는 취지에서다. 2박3일 동안 대안활동과 집단상담이 진행됐다. 22일부터 열린 대부도(경기도 안산) 캠프에 참가한 학생은 모두 50명(남학생 43명·여학생 7명). 이들은 ‘그 좋아하는’ 인터넷 없이 사흘을 보냈다.

참가 학생들은 학교에서 실시한 ‘인터넷 중독 자가진단 프로그램(K척도)’ 테스트에서 중독이 의심되는 학생이 대부분이다. 일반사용자군이지만 부모의 권유로 참가한 경우도 있었다. 상담센터에서 상담 효과를 높이기 위해 온 학생, 약물치료를 받고 있는 학생도 있었다. 이수혁(가명·중2)군은 “주말에 밤을 새우며 24시간 인터넷 게임을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하루 4~5시간씩 인터넷을 했는데 주로 게임이나 블로그를 한다”는 박수호(가명·중1)군은 시간이 없어 숙제를 못하고, 수업시간에도 자주 졸았다고 털어놨다.

이들은 첫날 벨리댄스를 배우고, 저녁시간에는 보드게임을 즐겼다. “학교 선생님이 강제로 보내서 진짜 오기 싫었어요.” 박재훈(가명·중3)군이 솔직한 마음을 말했다. 하지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마음이 달라졌다. 새 친구들과 놀다 보니 생각보다 재미있었던 것. 인터넷 말고도 재미있는 놀거리가 많다는 것을 체험으로 느꼈다.

인터넷중독예방상담센터 김영식 연구원은 “이들은 인터넷에만 빠져 있어 캠프에 참가한 적도, 친구들과 몸을 움직이며 놀아본 경험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인터넷 때문에 폐인이 될 수 있다” 반성

갯벌에서 신나게 논 후 참가자들은 네 팀으로 나눠 집단상담을 받았다. 상담이라고 해도 심각한 내용이 아니다. 인터넷에 관한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과도한 사용 습관을 반성하고 사용시간을 줄일 수 있도록 결심하는 과정이다. 박영윤(화성시청소년지원센터) 상담원 팀은 ‘인터넷 때문에 그동안 미뤘던 일’을 정리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들은 종이에 운동·공부·숙제·친구 등을 쓰고 중요도에 따라 순위를 매겼다. 박 상담원은 “이런 활동을 통해 꼭 해야 할 일을 찾아보고, 내버려뒀던 일들을 하기 위해 스스로 인터넷 사용 시간을 줄여야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된다”고 말했다.

신완정 YC(청소년 동반자)의 팀은 방 한쪽 벽에 커다랗게 인터넷에 관한 마인드맵을 그렸다. 아이들이 관련 단어들을 얘기했다. 고위험군 아이들의 경우 게임 용어나 욕설도 등장했다. 나무와 쓰레기통을 그리고 인터넷의 장·단점을 써 넣어보기도 했다. ‘재미’ ‘뉴스’ ‘정보’ ‘인강’ ‘개인홈피’는 나무에 열매처럼 매달고, ‘강박적 집착’ ‘금단현상’ ‘불법 펌’은 쓰레기통에 넣었다.

신 YC는 “인터넷에 관한 사고를 확장하는 활동”이라며 “인터넷 외에도 재밋거리가 있고, 인터넷을 과다 사용하면 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설명했다.

좋은 친구들과 있으면 인터넷 “안녕”

“캠프 둘째 날 오전에는 늘어져 있는 학생이 많아요. 간밤에 인터넷을 못했잖아요. 일종의 금단현상이죠. 무기력하고 지루해 해요. 뭘 하자고 하면 ‘왜 해야 하냐’고 반문하기도 해요.” 캠프를 운영한 화성시 청소년지원센터 현금희 상담원의 설명이다. 안호재(가명·중1)군은 “첫날에는 게임을 하고 싶어 미치는 줄 알았다”고 고백했다. 매일 4~5시간씩 하다 갑자기 안 하니 어색했단다. 하지만 친구들과 놀다 보니 시간이 금방 가 오히려 아쉬워했다.

인터넷쉼터캠프에 2박3일 참가했다고 인터넷 중독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김영식 연구원은 “인터넷에 사로잡힌 마음의 벽에 균열을 내주는 정도”라고 표현했다.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부모의 꾸준한 관리가 필요하다. 인터넷을 하지 않아도 즐거운 다른 ‘거리’를 자녀가 찾을 수 있도록 부모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윤정헌(가명·중3)군은 “한때 하루 12시간씩 인터넷 게임을 했는데 취미활동으로 유도를 하면서 인터넷 사용 시간이 줄었다”고 말했다. 엄마의 강요로 참가한 하진철(가명·중1)군은 캠프에 와 ‘나 혼자 바보는 아니었구나’라는 걸 느끼고 조금 안심했다. 그리고 인터넷을 대신할 ‘대상’도 찾았다. 같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다. “캠프 첫 날은 다들 처음 만났으니까 어색하잖아요. 그때 정말 인터넷 생각이 간절했어요. 하지만 친구들과 어울리다 보니 인터넷 생각이 조금씩 사라졌어요. 돌아가면 친구들과 많이 만나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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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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