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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사회학 적용한 연구서 잇단 출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0면

일상 (日常) 이 학문으로 다가온다.

스쳐가는 일상. 그 곳에서 의미를 찾는 작업은 일상만한 사소함으로 그치지 않는다.

보다 큰 의미를 향한 실마리, 바로 그것이다.

일상문화에서 보는 사회학이란 생활의 단면들을 마치 그것이 처음인 양 이방인의 눈으로 바라보며 그 이면에 숨어있는 사회학적 의미를 탐구하는 것이다.

거창한 이데올로기가 물속 깊숙이 가라앉은 오늘, 사회학이란 연구는 평범한 삶의 문제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되는지도 모른다.

이런 흐름을 타고 최근 거대한 사회학적 연구의 틈을 가로지르며 삶의 작은 결들을 파고드는 사회학적 관심이 일고 있다.

사회학자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랑' 에 관한 탐구서를 냈다.

출판시대에서 펴낸 '사랑을 읽는다' .함교수가 이대생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통해 신세대 여성의 사랑을 분석한 성과물이다.

"남자친구가 군대를 가는데 실감이 안난다. 기다릴까 말까. " "3년사귄 남자가 있어요. 한데 이 남자는 제 손목 한번 안잡죠. 자존심 상하더군요. " 사랑에 대한 젊은이들의 목소리는 여러가지다.

실제 에세이나 아포리즘처럼 사랑에 대한 느낌을 묶은 책이나 사랑의 기술에 관한 번역서는 많았어도 현재 진행형 사랑을 하고 있는 신세대 젊은이들의 목소리를 담아낸 작업은 처음. 이 책에는 사랑의 시작부터 이별까지 그들의 목소리가 물 위로 오른 가물치 마냥 파닥거린다.

함교수는 "사회학적 입장에서 쓴 글이라도 누구에게나 읽힐 수 있는 책을 쓰고 싶었고 지식과 삶이 괴리돼 속된 말로 재미가 없는 것은 안된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젊은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담았어요. 실제 사랑이란 걸 연구한다는 게 어려웠지만 과학적 분석이 언젠가는 있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시도한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고 저술동기를 설명한다.

일상문화연구회가 펴낸 '일상속의 한국문화' (나남출판刊) 는 지하철.자동차.집.텔레비전 등 그야말로 생활 자체를 들여다 보고 있다.

일상문화연구회란 프랑스에서 공부한 사회학자들이 결성한 연구모임으로 인문사회과학이론을 한국문화분석에 접목시키는 작업에 몰두한다.

이들이 이번 연구를 통해 중점을 둔 것은 일상을 통해 한국인의 '마음의 습관' 을 밝혀내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성격' 을 찾으려는 것. 지하철을 한 예로 들어보자.

지하철이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분위기를 가장 강하게 느낄 수 있는 공간. 특히 이 곳은 지하철 1호선부터 8호선까지 서로 다른 독특한 분위기를 띠고 있으면서도 팬티와 여성 내의 광고란 공통성을 지닌 독특한 장소이다.

또 앉는 자리를 두고 일어나는 세대간의 갈등에서 시각장애자가 녹음된 반주에 맞춰 무감하게 부르는 찬송가의 울림까지. 지하철 이용자라면 누구나 느낄 수 현상들을 끄집어 내 그 의미들을 분석한다.

그러면서 기타나 바이올린으로 비틀즈의 '예스터데이' 를 연주하고 팬터마임 공연이 펼쳐지는 파리의 지하철을 우리와 비교해 본다.

좀더 인간적인 실생활 실현을 위해. 제주대에서 사회학을 가르치는 권귀숙교수는 신혼여행을 들여다 봤다.

문학과 지성사에서 나온 '신혼여행의 사회학' . 한마디로 '사회학' 저서로는 너무 부드럽고 '신혼여행' 참고서로는 너무 딱딱한 게 이 글의 특징이다.

신혼여행의 메카 제주도에 거주하는 이유에서인지 권교수는 신혼여행의 기다림, 출발과 도착, 첫날밤.관광과 돌아오는 길 등에 관한 방대한 통계자료를 수집하고 신혼부부와의 인터뷰 등을 통해 실증적인 접근에 성공하고 있다.

결국 일상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이 책들은 한국 학문의 중병인 삶과 지식의 심각한 이격 (離隔) 과 맹목적으로 강대국의 완성된 논리만을 추구하는 학문풍토를 바로잡는 계기가 된다는데 그 의미가 있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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