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작&상영작] '신부수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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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면

감독 : 허인무
주연 : 권상우·하지원·김인권
장르 : 로맨틱 코미디
등급 : 12세
홈페이지 : (www.sinboosooup.com)
20자평 : 험한 세상, 어른들을 위한 동화가 필요하다면

'신부수업'은 참 착한 영화다. 서품식을 한달 앞둔 예비 신부(神父)의 금지된 사랑이라는 파격적인 소재를 다루면서도 이를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용도로 쓰지 않았고, 권상우.하지원이라는 톱스타를 주연배우로 내세우면서도 이들의 스타성에만 의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때문에 극장을 떠날 때 잔잔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요즘 보기 드문 영화가 됐다.

'신부수업'은 예비 신부가 하느님이 아닌 여자, 그것도 신실함이라고는 조금도 없을 것 같은 말괄량이 아가씨와 사랑에 빠지는 얘기다. 모범 신학생 규식(권상우)이 '영성강화훈련'을 받는 시골 성당에 이 성당 신부의 조카 봉희(하지원)가 찾아오면서 규식의 신부수업에 차질이 빚어진다. 로맨틱 코미디가 늘 그렇듯 뭐든지 제멋대로인 봉희와 뭐든지 원리원칙대로 하는 규식이 티격태격하다 사랑에 빠진다.

이렇게 처음부터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지만 이 영화는 전혀 상투적이지 않다. 특히 규식과 봉희가 서로에게 끌리는 과정을 묘사하는 장면들은 모두 잔잔하면서도 짙은 여운을 남긴다.

마음이 흔들리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규식이 남몰래 '내 마음속에 들어오지 마세요'라고 낙서하는 장면이나, 서품식을 받으러 떠난 뒤에야 비로소 봉희가 남몰래 자신의 뒷모습을 보며 '데오 그라시아스'를 되뇌었다는 걸 알게 되는 부분 등이 그렇다. '데오 그라시아스'는 규식이 기도를 마칠 때마다 외던 말. 둘이 만난 지 얼마 안 됐을 때 이 구절의 뜻을 묻는 봉희에게 규식은 "사랑하는 사람한테 사랑한다고 말하는데 다른 사람이 들으면 부끄럽잖아요. 일종의 암호 같은 거예요"라며 신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고백했다. 결국 봉희는 규식에게 끊임없이 사랑을 고백하고 있었던 것이다.

혹자는 전작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멋지게 쌍절권을 휘두르던 권상우의 멋진 몸을 왜 이렇게 사제복 안에 감췄느냐고, 그의 매력을 살리지 못한 게 아니냐고 불평할지 모른다. 권상우는 이 영화에서 더 이상 '몸짱''꽃미남'이 아니라 정말 온전히 착한 신학생으로 새 매력을 보여준다. 폼 나고 돋보이려 하기보다 충실하게 캐릭터에 몰입한 덕분이리라.

'신부수업'은 분명 착한 영화지만 폭력.섹스같은 강한 자극에 익숙한 관객들이 과연 이렇게 착한 영화를 참아줄지, 그건 미지수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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