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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레저] 에어컨도 울고 갔다 얼음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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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밀양의 얼음골 근처인 호박소 계곡. ‘자연 슬라이드’를 타고 내려오는 이윤미(20).신순화(20)씨 모습에서 더위는 찾아볼 수 없다.

올 여름은 더위가 유난하다. 입추가 내일이지만 염천(炎天)은 좀체 가라앉을 줄 모른다.

기상청도 8월 중순은 지나야 무더위가 한풀 꺾일 것이라 예보한다.연방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땀 한번 식혀봤으면, 얼음장 같은 계곡물에 발 한번 담가봤으면, 그 뼛속까지 파고드는 냉기에 진저리를 치고 온몸에 닭살이 돋아나봤으면….

간절하다. 선풍기를 끼고 살아도, 아이스크림을 물고 살아도 간절하다. 그래서 이번주 week&의 레저 제안은 '비교 체험! 얼음골 피서'다.

삼동 추위엔 훈훈한 김 새나오고 삼복 더위에 얼음이 언다는 바로 그 '얼음골'이다.

현재 전국의 얼음골은 모두 10여곳. 이 가운데 가장 알려진 세곳을 다녀왔다. 전북 진안의 풍혈냉천, 경북 의성의 빙계계곡, 경남 밀양의 얼음골. 폭염이 연일 기승을 부렸던 지난 7월 말 현재 세곳 모두 얼음은 보이지 않았다.

요즘엔 보통 3월께 얼음이 얼기 시작해 하지(6월 21일)를 전후해 녹는다고 한다. 대신 얼음골 세곳 모두 폭염은 없었다. 바깥의 수은주는 35도를 훌쩍 넘었지만

얼음 바람이 나온다는 구멍은 0도를 갓 넘겼을 뿐이다. 신기하고 희한했다. 현대과학은 이러한 지형을 애추(崖錐)라는 화석 지형이라고 부른다.

지하에 유입된 차가운 공기와 지하수가 애추를 통과하면서 벌어지는 과학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아니 그렇게 이해는 했어도 얼음골 경험은 여전히 신기하고 희한하다.

직접 체험해 보시라. 유난스럽다는 이번 무더위도 얼음골에선 그저 딴세상 얘기이니.

글.사진=손민호 기자

*** 자연 냉장고 - 진안 풍혈냉천

이상하게 진안은 늘 지나치는 곳이었다. 여행자만 그런 게 아니다. 임진왜란도, 한국전쟁도 진안은 스쳐 지났다. 진안 사람들은 마이산의 기운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평균 해발고도 400m가 넘는 내륙 고지 진안은 늘 고요하고 서늘하다.

그 유명한 마이산에서 자동차로 20분. 지도를 들고 성수면 좌포리 양화마을로 찾아들었다. 풍혈냉천이란 이정표가 보인다. 풍혈(風穴)은 이름처럼 바람이 나오는 구멍. 그냥 바람이 아니라 찬바람, 기껏해야 3 ~ 4도가 간신히 넘는 바람이 나오는 구멍이다. 구멍은 한둘이 아니다. 산기슭의 바위 틈틈이 모두 풍혈이다. 사람들이 바위 사이에 기대 서 있거나 앉아있다. 이방인에겐 영 어색한 이 풍경이 바로 진안의 피서 모습이다. 규모가 큰 구덩이는 일제 때 누에씨 창고로 쓰였단다. 요즘엔 수박을 저장한다. 서리가 허옇게 서린 수박 한 통에 5000원. 지열을 받은 외부 온도는 35도를 넘었지만 한발짝만 안으로 들어와도 수은주는 10℃를 유지한다.

풍혈 바로 옆에 냉천(冷泉)이 있다. 명의 허준이 약 짓던 물이란 얘길 듣고 왔지만 겉보기엔 보잘 것 없다. 여느 시골 약수터나 빨래터가 연상된다. 약숫물은 약간의 탄산기가 느껴진다. 하지만 이가 시릴 만큼 차갑지는 않다. 약수터 앞 물 받아놓은 곳에 발을 담가본다. 이럴 수가! 제 아무리 용을 써도 30초 이상 버텨내기 힘들다. 발끝이 저리는가 싶더니 머리카락 올올이 바짝 서는 것 같다. 여기서 뜻밖의 사실 하나. 산 반대편에선 온천이 나온다. 진작에 허가는 받았지만 아직 개발 전이라 아는 사람이 드물다. 산 하나 사이로 찬물과 뜨거운 물이 솟구친다는 얘기다.

*** 여행정보

진안은 웰빙 피서의 원조라 할 만하다. 한시간이면 마이산 산행이 가능하다. 지금 찾아가면 암벽을 타고 오른 거대한 주황색 꽃덩굴을 볼 수 있다. 능소화가 한창이다. 계곡도 좋다. 해가 늘 구름에 가리거나 반나절만 해가 비칠 만큼 계곡이 깊다는 운일암반일암, 백운동 계곡, 갈거 계곡 등 가족이 갈 만한 곳이 여럿이다. 먹거리도 풍부하다. 진안은 국내 인삼 생산량의 8%를 차지한다. 근처 충남 금산이 인삼으로 유명하다지만 실제론 진안에서 인삼이 더 많이 난다. 향토 음식으론 새끼 돼지를 약재와 함께 삶은 애저탕이 유명하다. 마이산 근처 금복회관(063-432-0651)이 잘 한다. 3인분 4만원.

▶가는 길=전주에서 26번 국도를 타고 40분 거리다. 서울이나 부산에서 출발한다면 대진고속도로를 타고 장수나들목에서 나온다. 26번 국도로 30분 거리. 진안군청 문화관광과 063-430-2224.

*** 물의 고장 - 의성 빙계계곡

643개. 의성군 내에 있는 저수지 숫자다. 지도를 펼쳐보면 의성이 물의 고장이란 사실을 바로 알 수 있다. 낙동강 지류인 쌍계천과 남대천이 의성군을 휘감거나 가로지르고, 곳곳에 저수지가 박혀 있다. 낚시꾼들에게 의성이 전국에서 손꼽히는 붕어 낚시 명소로 불리는 이유다. 그래도 큰 물난리 한번 없었다. 물이 쉬이 빠지는 화산암 지대이기 때문이다.

읍내에서 자동차로 30분이면 춘산면 빙계리 빙계계곡에 다다른다. 산에 얼음 구멍과 바람 구멍이 나있어 빙산이라 하고, 산을 감돌아 흐르는 내를 빙계라 하고, 그 동네를 빙계리라 부른다. 유서 깊은 얼음 동네다. 바람 구멍의 풍경은 진안의 것과 비슷하다. 산기슭에 삼삼오오 사람들이 몰려있다 싶으면 여지없이 바람 구멍의 출구다. 얼음구멍 빙혈(氷穴)은 실내에 있다. 사람의 손을 타지 않으려고 입구를 유리문으로 막아놨다. 온도계를 보니 영상 1도가 채 안 된다.

진안은 유명한 계곡이 풍혈냉천과 떨어져 있지만 의성은 계곡 안에 얼음골이 들어앉았다. 텐트 치고 물놀이가 가능하다.

계곡 입구에서 어른 1000원(어린이 500원)씩 입장료를 받는다. 여기서도 흥미로운 사실을 찾아냈다. 빙계계곡 입구 5분 거리에서 빙계온천(054-833-6660)이 영업 중이다. '얼음 계곡의 따뜻한 샘'이라. 말로는 모순되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빙계계곡 가는 길의 금성산(해발 531m)은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화산이다. 7000만년 전에 폭발한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로 백두산의 폭발 추정 연도는 1000만년 전. 금성산 근처에 빙계계곡이 있고 이 일대 마늘이 유독 품질이 좋다. 서너 시간 산행 코스다.

*** 여행정보

의성하면 마늘이다. 의성 마늘은 하지를 전후해 수확한다. 그리고 한달쯤 말린 뒤 시장에 내놓는다. 지금이 바로 의성 햇마늘이 나올 때다. 농협에서 3㎏ 한 상자에 3만원. 의성은 한우로도 잘 알려졌다. 읍내의 숯불갈비 경동(054-832-9680)에선 갈빗살만 취급한다. 쇠갈빗살 구이 150g에 1만2000원. 과거 화산에서 8 ~ 12㎞ 떨어진 곳에 온천이 나온다는 설(說)은 의성에서도 유효하다. 금성산에서 10㎞쯤 거리, 중앙고속도로 의성 나들목 입구 인근에 유명한 온천장이 있다. 탑산 온천(054-833-5001). 국내에선 흔치 않은 게르마늄 온천이다. 4500원.

▶가는 길=중앙고속도를 탄다. 서울 방면에서 간다면 남안동 나들목을 빠져나와 5번 국도를 타고 30분. 대구.부산에서 간다면 의성 나들목에서 나온다. 대구에서 40분 거리. 의성군청 공보실 054-830-6061.

*** 얼음골의 원조 - 밀양 얼음골

요즘 밀양 사람들은 풀이 죽었다. 밀양이 잇따라 전국 최고 기온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밀양은 억울하다고 말한다. 지난해까진 안 그랬는데 올해 유독 밀양만 더울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기온 측정 장소가 잘못됐다고 주장한다. 지난 봄 기온 측정기 인근에 대형 할인점이 들어서 주위 온도가 올랐기 때문이란 항변이다. 그래도 밀양은 무척 더웠다. 올 최고 기온인 38도를 기록했던 7월 30일. 밀양은 쩔쩔 끓고 있었다.

시내에서 24번 국도를 타고 울산 방향으로 40분쯤. 얼음골 이정표가 나타난다. 해발 1189m의 재약산 서쪽 기슭 9000여 평 일대. 예가 천연기념물 224호 얼음골이다. 이젠 보통명사처럼 쓰이는 얼음골의 '원조'다. 계곡에 들어서니 정말 소름이 끼친다. 계곡물엔 10초 이상 발을 담그기가 어렵다. 계곡에서 슬쩍 옆으로 비켜섰더니 훅 하고 더운 기운이 엄습한다. 얼른 계곡으로 걸음을 옮겼다. 규모나 냉기 모두 원조답다. 바람 구멍의 수은주는 영상 3도쯤 된다. 의성처럼 밀폐된 실내가 아니라 탁 트인 계곡에서 잰 온도다.

여기도 허준 일화가 전해온다. 허준이 스승 유의태의 시신을 해부한 곳이 이 일대라는 것. 물론 믿거나 말거나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전북 진안의 냉천도 허준 일화가 얽혀있지 않은가. 더 놀라운 사실이 있다. 시청 직원에게 "얼음골 근처에 온천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떻게 아느냐"고 되묻는다. 얼음골 입구에서 10분 거리 산내면 송백리에 온천이 있었다. 지금은 몇해째 휴업 중이란다. 진안과 의성처럼 밀양의 얼음골도 10분 거리 안쪽에서 온천물이 나온다.

*** 여행정보

시내에서 얼음골 가는 길의 산외면 단장리에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표충사가 나온다. 사명대사의 유물이 있는 곳. 절을 끼고 도는 계곡도 유명하다. 얼음골에서 30분 정도 걸어 오르면 호박소라는 연못이 있다. 웅덩이가 절구처럼 생겨서 호박소다. 호박은 절구의 밀양 사투리다. 물놀이 장소로 좋다. 재약산과 인근 사자평은 억새 명소다.

▶가는 길=서울에서 밀양은 고속철로 2시간30분 거리다. 고속철이 하루 여덟번 밀양역에 정차한다. '서울역~밀양' 요금 3만9700원. 서울에서 자동차로 움직인다면 대여섯 시간은 족히 걸린다. 대구까지 내려와 구마고속도로를 타고 창녕 나들목에서 빠진 뒤 24번 국도를 40분쯤 달려야 한다. 부산에선 한시간 거리다. 밀양시청 공보경영담당 055-359-5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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