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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문제부터 여성 힘들게 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 여성개발원 김양희 선임연구위원

"여성개발원 연구원은 자폭하라. 당신같은 쓰레기들에게 월급주기 위해 세금 꼬박꼬박 내는 내가 바보지."(정광국), "국민의 상식을 벗어난 연구는 비난받아도 마땅함!"(청소부)

중앙일보는 지난달 24일 "쓰레기 종량제는 성차별적 정책?"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1면에 단독보도했다. 한국여성개발원에서 연구해 환경부에 제출한 보고서 내용을 소개한 이 기사가 나간 뒤 여성개발원 홈페이지는 네티즌들의 비난으로 들썩였다.

당시 기사는 종량제가 여성에게 가사 이외에 또 하나의 무보수 노동을 부담시켰다는 게 골자였다.

'지속가능하고 성 인지적인 환경 거버넌스의 기반조성 연구'라는 제목의 보고서는 또 "환경 정책은 실행 과정에서 여성의 높은 참여를 전제로 하고 있음에도 입안 과정에서는 여성의 의견이 그다지 반영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당시 이같은 연구 보고서를 제출해 비난의 표적이 됐던 한국여성개발원 김양희(49.여) 선임연구위원을 만났다. 그는 일부 비난에도 쓰레기 종량제가 여성의 가사노동을 전제로 한 정책이라고 분명히 말했다.

-연구 동기는?

"우리나라 여성들은 80년대 중반의 '공해추방연합' 등 초창기 환경단체를 통해 환경문제에 관여해왔다. 그러나 환경운동의 동원대상이고 소비자로서의 역할에만 한정돼 있는 모습을 보였다. 70년대의 물자절약, 쓰레기 줍기 캠페인 등에서도 그랬다. 특히 쓰레기 종량제같은 폐기물 관련 정책의 실행과정에는 여성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이와 관련해 여성계에서 그동안 문제제기가 있었다. '가정주부들이 이 문제를 담당하는 걸 너무 당연시하는 정책이 아니냐'는 지적이었다. 이번에 이 정책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자 했다. 2002년말 여성발전기본법에 정부가 정책을 입안할 때 여성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야 한다는 조항이 생긴 것도 동기가 됐다."

-쓰레기 종량제는 95년에 도입됐다. 그간 이런 지적이 없었나?

"여성계에서 간헐적으로 지적이 있었지만 반향은 없었다. 환경부 쪽에서도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은 것 같다. 명백히 누구를 차별한다는 논리로 얘기하기는 어려운 문제다. 전통적 성역할을 지적해야 하고. '뭐가 문제냐. 여성이 살림을 하는데'라며 그간 문제시하지 않던 이슈다. 10년새 성평등에 대한 의식이 높아졌다는 배경도 작용한다. 일단 이같은 문제제기가 기사화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어떤 지적이 있었나?

"93년 나와 김이선 씨가 '우리나라 여성들이 환경과 관련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환경의 청소자로 고착시킴으로써 고정된 성별구조를 재생산하는 결과를 낳을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문순홍 씨는 99년 '한국의 폐기물 정책은 생산 측면보다는 소비 측면에서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했다. 가정주부들에게 폐기물 처리를 맡기고 있어, 생산자와 소비자간 책임 분배에서 균형이 잡히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이후에도 계속 이같은 지적이 있었다."

-연구기간과 연구비는?

"7개월간 연구했다. 연구비는 총 2000만원. 날 포함한 네 명의 연구원과 한 명의 연구보조원이 참여했다. 자문위원은 8명이었다. 연구원 성비는 반반이었다."

-연구방법은?

"문헌조사, 공무원 면접, 전문가 조사 등"

-실제로 여성이 폐기물 처리 문제에 얼마나 참여하는지, 혹은 이 '무보수 노동'에 들여야 하는 번거로움의 실태는 어떤 건지 등은 조사하지 않았나?

"이번 연구의 목적은 종량제 자체에 대한 분석이 아니었다. 연구의 성격도 애초부터 실태조사는 아니었다. 통계나 설문조사 부분은 환경부의 몫이다."

-기사가 나간 뒤 여성개발원 홈페이지 등에 "사소한 걸 가지고 차별이니 뭐니 따진다", "여자도 군대가라" 등 비난이 빗발쳤다.

(미소지으며)"사소하다고 하는 분은 쓰레기를 안 치워본 게 아닐까. 우리사회에서는 이게 왜 성차별인지를 충분히 얘기할 기회가 없었다. 비난받은 건 워낙 한두번이 아니었으니. '부부강간'이나 '군가산점 폐지' 논란 때는 대단했다. '간장 파동' 때는 '여자들이 간장도 안 담그고 밖으로 쏘다녀서 이런 문제 일어났다'는 얘기가 언론에 버젓이 실리기도 했었다. 쓰레기 치우는 문제가 그렇게 대단해서 문제제기한 건 아니다. 그런 사소한 문제부터가 여성을 힘들게 한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우린 이게 성차별이라 단언하진 않았다. 일과 시간대에 집에 있는 주부의 가사노동을 전제로 한 정책이라는 얘기였다. 나는 사회심리학 박사다. 고정관념, 의식의 문제에 관심이 있다."

-환경부 반응은?

"조사 기간 중 가정에서 쓰레기 처리나 물사용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조사해 정책에 반영하면 좋겠다고 건의했더니, 환경정책은 집이라는 사적 공간은 다루지 않고 집밖으로 폐기물이 나온 뒤부터를 다룬다고 했다. 이후 환경부에선 이 연구를 참신하게 받아들였다. 환경 정책 중장기 계획을 수립중이다."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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