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성인 애니메이션 '나는 이상한 사람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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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성에 관한 발랄하면서도 전복적인 상상력으로 화제를 모았던 양영순씨의 '누들누드' 가 최근 비디오로 나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모았었다.

이와 비슷한 발상의 성인 애니메이션이 극장에 걸린다.

올해 부산영화제에서도 소개됐던 빌 플림튼 감독의 '나는 이상한 사람과 결혼했다' .비행중인 한 쌍의 오리가 교미에만 열중한 탓에 지붕의 위성 안테나와 충돌하고 거기서 나온 괴상한 레이저 광선이 그랜트라는 남자의 뇌에 적중한 순간 목 뒤에 혹이 생긴다.

이 혹은 그랜트에게 환상을 현실로 만드는 초능력을 준다.

정사 도중 아내의 모습을 자기의 상상대로 바꾸어 버리기도하고 밉살스럽게 구는 장모의 입과 귀에서 벌레들이 우글거리게 하거나 장인의 귀에서 악기가 울리게 한다.

영화는 옆 사람을 힐끔거리게 할 만큼 때로 불편하고 혐오스럽기도 하지만, 그러면서도 서로 눈길을 마주치는 순간 폭소를 터뜨리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

그건 감독이 우리의 숨겨진 욕망을 정확히 읽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플림튼은 리비도에만 눈길을 던지는 '프로이트' 가 아니다.

현대 사회의 병리와 그 병리를 진단하는 사회학자의 안목을 겸비하고 있다.

그는 후기 산업사회의 주요한 특징은 모든 가치의 상품화이며 이 상품화를 촉진하는 통로가 매스미디어라고 보는 것이다.

크랜트가 초능력을 갖게 되는 동기에서부터 이런 의도를 읽을 수 있다.

방송재벌 가일즈 회장이 그랜트의 혹을 이용해 전세계 통신망을 장악하려는 음모를 꾸민다는 설정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본능으로서의 '욕망' 과 사회적으로 구성된 '탐욕' 을 번갈아 가면서 인간의 내면과 외피를 한꺼번에 벗겨내는 이 영화는 기존 애니메이션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색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14일 개봉.

이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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