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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나로호, 조기 발사가 능사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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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한국 최초의 우주발사체인 나로호 발사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뜨겁다. 발사 일자가 확정되면서 고조됐던 잔치 분위기가 발사 연기가 필요하다는 러시아발 팩스 한 장에 찬물을 뒤집어쓴 꼴이 되고 말았다. 온탕, 냉탕을 오가는 뜨거운 관심이 사업을 담당한 과학기술자들에게는 일견 반가우면서도 너무나 부담스럽다. 실패했을 때 쏟아질 질책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한 달 전 90%를 웃돌던 발사 성공 확률이 최근 언론 보도에서는 27.3%까지 내려갔다.

사실 국민들로서는 궁금한 점이 많을 것이다. 왜 2억 달러나 주고 기술 도입을 했는데 러시아의 일방적인 발사 연기 결정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는가. 1단 엔진이 완성품 구매라면서 왜 이토록 거액을 지불해야 하는가. 2000만원짜리 쏘나타 구입하면서 엔진 개발비 2억원을 지불한 꼴 아닌가. 지금보다 10배 이상 무게의 위성을 올려야 할 나로 2호를 개발하는 데 고가의 이번 기술 협력이 도움이 되긴 하는 것인가…. 사실 이번 프로젝트 자체가 우리의 기술 능력을 훨씬 넘어서는 것인 데다 각종 정치적 요구에 부응하느라 급히 계약을 체결한 데 근본적 문제가 있어 보인다. 연구 기반 없이 100% 성공을 추구하다 보니 안전한 길만 택한 것이다.

러시아와의 기술 협력 내용에 단지 1단 로켓 구입만 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전체 로켓 시스템 설계에 대해 자문하고, 발사 시까지의 제반 절차들도 경험이 없는 우리로서는 다 배우는 것들이다. 기술 자문을 통해 로켓 시스템 설계에 대해 배운 바가 많을 뿐더러 발사 이전의 엄격하고 신중한 검토 및 준비 과정 등도 향후 독자적인 로켓 개발에 큰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옛 소련의 스푸트니크호 발사 이후 전 세계적으로 약 4200회의 로켓 발사가 있었고, 약 130회의 실패 사례가 보고되었다. 성공률은 약 97%다. 나로호 발사는 수십 년 동안 수많은 발사 성공과 실패를 경험한 러시아의 엄격한 제반 가이드라인에 따라 진행되고 있으므로 성공 확률을 일단 97%로 봐도 좋을 것이다.

나로호 발사 연기는 성공을 위한 조심스러운 조치로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기술적인 문제가 정리되면 관련 전문가들이 모여 새로운 발사 일정을 잡겠지만 너무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본다. 러시아가 새로 개발한 로켓의 안전성을 더 실험하려 한다면 우리도 좀 더 기다려 그 결과를 보고 발사해도 늦지 않다. 우리로선 어차피 기술을 익히려고 시작한 사업인 만큼 조금이라도 더 배우고 교훈을 얻어 궁극적으로 자체 개발과 발사에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한다. 로켓 발사의 불확실성도 우리가 이해해야 할 요소다. 40년 전 막강한 새턴 로켓으로 인간을 달까지 왕복시켰던 미국에서도 심심찮게 실패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일본도 초기 로켓 개발 과정에서 미국에서 구매한 고체 로켓 때문에 2번의 발사 실패를 경험하는 등 온갖 어려움을 겪은 끝에 자체 로켓 개발에 성공했다.

로켓 개발은 어렵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리 힘으로 해나간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실패도 발전의 한 과정이라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산업체들에 많은 참여 기회를 주면서 연구소와 책임과 기술을 공유하는 체계도 필요하다. 또한 우주 연구개발 사업이 지속적으로 유지·발전하기 위해서는 항공 분야와의 유기적인 연계도 필요하다. 여러 부처가 중구난방으로 항공우주 개발 사업을 진행해서는 효율적인 기술 개발과 빠른 발전이 어렵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고 우주항공의 선진화를 위해 항공우주산업을 통할하는 우주항공청을 만들 필요가 있다. 여기서 국가 전체의 항공우주산업 수요를 창출·조정하고 지속적인 기술개발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김승조 서울대 교수·항공우주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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