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T 미디어랩, 상상을 깨는 ‘상상력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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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형태·색상이 복제되는 디지털 붓. 물건에 댄 뒤 특수 제작된 스크린에 붓을 갖다 대면 해당 물건의 색상이나 움직임이 묘사된다. 맨 오른쪽 사진은 인터넷으로 전달된 신호를 실제 자극으로 변화시키는 ‘반응전달 재킷’.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톰 크루즈가 가상 스크린에서 손을 움직여 데이터를 조작하던 장면을 기억하는가. 이 기술을 현실에서 실제 구현한 곳이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 설립된 ‘MIT 미디어랩’이다. 미디어랩은 10일 서울 연세대 백주년기념관에서 콘퍼런스를 열고 가까운 미래에 등장할 첨단 기기들과 다양한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미디어랩이 한국에서 행사를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어떻게 조립하느냐에 따라 움직임이 달라지는 블록 로봇 ‘토포보’,

◆아이디어 넘치는 첨단 기기=콘퍼런스에서 먼저 눈길을 끈 것은 디지털 붓(I/O Brush)이다. 이 붓으로 물건을 접촉한 뒤 특수 제작된 스크린에 붓을 갖다 대면 해당 물건의 색상이나 움직임이 그대로 스크린에 묘사된다. 붓 가운데에 초소형 비디오카메라와 터치 센서가 장착돼 있기 때문이다.

감정을 표현하는 로봇 ‘넥시’도 눈길을 끄는 발명품 중 하나다. 눈썹과 눈꺼풀·턱·눈동자 등을 움직여 기쁨·분노·슬픔·행복 같은 16가지의 감정을 표현한다. 상상 속에서만 그렸던 첨단 기기들이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반응전달 재킷(STRESS OutSourced)은 인터넷으로 전달된 무선 신호를 실제 자극으로 변환시킨다. 예컨대 페이스북·트위터 등을 통해 친구가 신호를 보내면 재킷에 달린 진동기로 마사지를 받을 수도 있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처럼 손동작으로 대량의 정보를 제어하는 ‘G-Stalt’도 MIT 미디어랩이 개발한 첨단 기기들이다. 블록을 어떻게 조립하느냐에 따라 움직임이 달라지는 블록 로봇 ‘토포보’와 여러 반응을 기억하고 그것을 따라 하는 장난감인 ‘컬리봇’ 등도 이날 소개돼 관심을 끌었다.

미디어랩의 이시이 히로시 교수는 “예술과 공학 같은 기초학문과 디지털 기술을 접목시킨 결과 상상 속의 제품들을 실제 만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미디어랩의 원동력은 무한 상상력=세계 최고의 미디어·디지털 연구기관으로 성장한 미디어랩의 원천은 ‘톡톡 튀는 상상력’이다. 미디어랩의 모토도 ‘쓸모없어도 일단 상상하라’다. 실제 이곳에서는 틀에 박히지 않는 생활과 사고가 일상화돼 있다. 연구를 하다 바이올린을 켜기도 하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도 한다. 이런 토양에서 손을 대면 자동으로 연주되는 기계나 인간의 움직임을 따라 하는 장난감 같은 첨단 기기들이 탄생한 것이다.

이시이 교수는 기계를 잘 다루지 못하는 어머니가 라디오를 켜는 대신 냄새로 날씨를 알 수 있도록 날씨에 따라 향기가 달라지는 유리병을 만들기도 했다. 물론 상용화된 제품은 일부지만 새로운 시도는 항상 환영받는다.

서로 다른 경력·전공·국가의 사람들이 한데 모여 의견을 나누는 점도 아이디어의 원동력이다. 이곳에는 공학뿐 아니라 디자인·음악·인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공자들이 모여 있다. 미디어랩의 정재우 박사연구원은 “생각이 달라도 함께 토론하면서 서로 공감대를 넓혀 보자는 분위기가 일상화돼 있다”며 “다른 경험을 한 동료와 부딪히다 보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게 된다”고 말했다. 미디어랩은 13일까지 서울 동숭동 제로원 아트센터에서 ‘생활을 위한 기술’ ‘일상생활을 변화시키는 발명’ 등을 주제로 워크숍을 열고, 15~16일에는 워크숍의 연구 성과를 전시회 등을 통해 공개할 예정이다.

손해용 기자

◆MIT 미디어랩=1985년 설립된 미디어·디지털 분야 연구기관이다. 설립 후 정보기술(IT)을 우리 일상과 어떻게 접목시킬지 연구해 왔다. ‘인간을 위한 기술’을 주창하며 학문 간 경계를 무너뜨린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나누는 분위기 때문에 ‘상상력 발전소’ ‘꿈의 연구실’이라는 별칭이 따라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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