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 놀이터, 이번엔 한밤중 관 속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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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일까 놀이터일까. 조영남씨는 관 속에 숨어있다가 지인들을 놀래키는 ‘놀이’로 전시를 시작했다. ‘요셉 보이스와 영남 보이스’전이 열리고 있는 갤러리는 전시장이자 노는 곳이다. [서울 C·T 갤러리 제공]

24시간 문 여는 가게가 여럿 모여있는 서울 청담동 골목에 ‘수상한 이웃’이 들어왔다. 전시회를 연다는데 자정이 다돼서야 끝난다. 지난 5월 개장한 ‘서울 C·T 갤러리’는 대부분의 갤러리가 폐장하는 오후 7시를 지나 밤 9시쯤에야 바빠지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그림을 보고 그 옆에 앉아 와인을 마시며 논다.

그리고 ‘그’는 오후 7시쯤 어슬렁 나타나곤 한다. ‘제대로 놀자’고 강조하며 전시회를 열고 있는 가수겸 작가 조영남(64)씨다. 그는 ‘사람들 놀다’ 등 화투와 바둑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전시 중이다. 괴짜 현대 미술가로 꼽히는 요셉 보이스(Joseph Beuys, 1921~86)의 작품을 함께 소개하는 ‘요셉 보이스와 영남 보이스(voice)’전이다.

◆‘장례식’ 놀이=전시는 ‘제대로 노는 법’을 보여주며 오픈했다. 지난달 조씨의 지인들은 ‘부의금을 50% 디스카운트 해주겠으니 7월 21일(전시 오픈일) 조영남 장례식에 참석하라’는 ‘부음’을 받았다. 나머지 반은 실제 장례식에서 내라는 뜻이었다.

이날 ‘서울 C·T 갤러리’에는 조씨의 관이 놓였고 그를 똑 닮은 인형이 누워 있었다. 불이 꺼졌다 다시 들어온 순간, 실제 조씨가 관에 숨어있다가 ‘부활’했다. 그는 “죽어서 요셉 보이스, 백남준을 만나고 온 길”이라고 했다. 생전에 ‘모든 것이 예술’이라며 의자 위에 지방 덩어리를 얹어 전시하고, 피아노를 천으로 감싸 내놓은 작가가 보이스다. 백남준과 의기투합해 1963년 ‘음악 전람회-전자 텔레비전’ 전시에서 피아노를 부순 것도 그였다. 조씨는 이처럼 ‘잘 노는’ 분야의 선배들을 만나고 오기 위해 가짜 죽음을 고른 것이다.

장례식을 치른 지 보름이 지난 지난주 저녁 갤러리에 나온 조씨는 “‘노는 예술’을 사람들이 잘 받아들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야간 전시’를 보기 위해 매일 밤 수십명씩 줄을 잇는 발걸음이 흐뭇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장례식에 대한 반응이 좋았다. ‘서울 C·T 갤러리’는 앞으로 일반 관람객도 신청을 하면 ‘셀프 장례식’을 열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여친’ 놀이=호응에 힘입어 조씨는 장례식을 한번 더 연다. 이번에는 중국이다. 베이징 ‘798 예술촌’ 내의 갤러리 ‘SZ 센터’에서 다음달 15일 장례를 치른다. 이번에는 진시황을 만나러 다녀오는 여정이다.

자신의 관 앞에는 병마용을 그린 작품을 걸고, 그 무사들의 얼굴마다 특별한 사진을 붙일 예정이라고 했다. 조씨가 ‘점심 먹다가 급히 작성한’ 명단에 들어있는 인물 30명의 사진이다. ‘행복 전도사’인 강사 최윤희, 기자 유인경씨 등 조씨의 ‘여친(여자친구)’들이다. 그는 “진시황이 신하들과 영생하려 했듯 나는 내 무덤 곁의 여친들과 함께 하겠다는 의미”라며 “한국에서 실명으로 하면 위험할 수 있으니 중국으로 ‘망명’해서 하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서울 C·T 갤러리는 조영남씨의 ‘놀이’를 계기로 ‘야간 개장’에 박차를 가한다. ‘파티 같은 전시’를 표방하며 앞으로도 자정까지 문을 열 계획이다. 여기에 맞는 작가들을 바꿔가며 선정한다. “예술은 즐거워야한다”며 합심한 작가와 전시장의 시도, ‘요셉 보이스와 영남 보이스’전은 다음달 12일까지 계속된다. 02-3442-4408.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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