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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신데렐라’ 10분 만에 네이멍구 사람들 사로잡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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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네이멍구 자치구내 얼도스시에서 7일 열린 국립발레단의 ‘신데렐라’. 현지 관객을 사로잡으며 ‘대중문화를 넘어선 순수예술에서의 한류’ 열풍을 예감케 했다. [국립발레단 제공]

시장 바닥이라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막이 올랐지만 객석에 앉은 사람은 절반에 불과했다. 나머진 자리를 찾지 못한 채 중간 통로에서 서성거리며 우왕좌왕했다. 아이들의 재잘거림도 끊이질 않았다.

중국 북부 국경지대에 위치한 네이멍구(내몽고) 자치구내 얼도스시. 한국인은 단 두명만 살고 있다는, 이 외지에서 7일 국립발레단(단장 최태지)의 ‘신데렐라’가 공연됐다. 아직 관람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현지 주민들에게 한국에서 날아온 발레는 낯설었다. 잡담과 휴대전화 벨소리, 카메라 플래시가 끊이질 않았다. 그러나 10분쯤 지났을까, 객석엔 조금씩 적막감이 흘렀다. ‘신데렐라’가 사막의 도시에 안착하는 순간이었다.

#관객 붙잡기 작전

국립발레단의 이번 공연은 중국 문화부에서 주최한 ‘아시아 국제 문화제’의 일환이다. 올해로 11회째를 맞은 이 축제는 중국의 변방 지역에서 돌아가며 연다는 점이 특징이다. 중앙의 통치력이 약화된 각 자치구에 ‘중국이 아시아의 중심’이라는 점을, 예술을 매개로 은연중에 전파하려는 중국 정부의 의도가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올핸 일본·인도네시아·북한 등 20여개국을 대표하는 예술 단체가 참여했다.

얼도스 극장은 1200여석. 티켓값은 630위안(약 11만3000원)으로 꽤 비쌌지만, 객석은 빽빽했다. 3막으로 이뤄진 작품은 두번의 인터미션까지 합해 본래 2시간 30분이다. 최근 몇차례 해외 공연에서 얼도스 시민들이 중간 휴식 시간에 쭉 빠져 나갔다는 정보를 입수한 발레단측이 고육지책을 썼다. 휴식 시간을 없애고 무대 세트를 바꾸는 5∼6분간, 사회자가 등장해 작품의 줄거리를 설명하고 출연진을 인사시키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어쩔 수 없이 관객은 진득하게 자리를 지켜야 했다.

객석 풍경은 부산했지만 관객의 만족도는 높았다. 한 꼬마아이는 “옷이 너무 예쁘다”라며 환하게 웃었다. 몽골족 우두빨라씨는 “발레 공연은 이번이 두 번째인데, 얼마나 아름다운지 처음 느꼈다”고 말했다. 네이멍구 차오신민 문화청장은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얼도스 시민들이 고급스런 예술을 향유했다. 한국 국립발레단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감격해했다.

#한류 탈중심화, 탈장르화, 탈한국화

한국엔 낯선 곳이지만, 얼도스는 가난한 도시가 아니다. 2000년대 들어 탄생한 계획 도시로 가스·석탄·캐시미어 등 풍부한 천연 자원을 자랑한다. 최근엔 해마다 20%이상씩 급성장해 2007년 도시의 1인당 GDP가 1만1000달러로 베이징(8200달러)을 넘어섰다.

이 신흥 도시에서도 한류(韓流)는 여전했다.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은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즉각 “대장금”을 말했다. 비와 강타, 안재욱의 이름도 오르내렸다.

그러나 반감도 있었다. 중국 문화부 관계자는 “한국의 문화는 국수주의적 성격을 띤 채, 자극적인 볼거리로 돈만 쏙 빼간다는 여론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중국대외연출공사 후앙빈 부감독은 “국립발레단이 공연한다고 해서 당연히 ‘춘향’이나 ‘심청’을 예상했다. 해외의 최신작이라 놀랐다”고 전했다. 한·중 문화예술포럼 유재기 회장은 “한류도 이제 지역을 다변화해야 한다. 대중문화로만 승부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베이징·상하이를 벗어나 외연을 넓히고, 가요·드라마를 넘어 순수 예술로까지 장르를 넘나들고, 한국적 색채를 강요하지 않는 글로벌한 콘텐츠로 다가가야 한류가 다시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주문이었다. 국립발레단의 ‘신데렐라’는 그같은 목표를 향한 첫걸음이다.

중국 네이멍구 얼도스=최민우 기자

◆국립발레단의 ‘신데렐라’=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세계적인 안무가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의 문제작. 유리 구두를 신지 않은 채 맨발로 추는 신데렐라와 몸에 착 붙는 옷을 입고 요염하게 추는 요정 등 ‘고전의 비틀기’가 특징이다. 국립발레단은 지난 3월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재개관작으로 이 작품을 올려 호평받은 바 있다. 중국 공연에선 김지영(신데렐라)·김주원(요정)·김리회(계모)·이동훈(왕자)·장운규(아버지) 등이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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