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을 이기는 기업]전구 메이커 태양전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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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전구 메이커 태양전자 (경남김해시 장유면부곡리) 이명례 (李命禮.54.여) 사장. 그녀가 건네준 명함은 작은 봉투 안에 들어있다.

주로 남자들을 상대해야 하는 험난한 사업세계에서 '튀지않는, 속 깊은' 여사장의 이미지를 심기 위해 정성을 들인 것이다.

여성특유의 섬세한 경영기법이 느껴진다.

그 덕분인가.

태양전자는 연간 매출 90여억원에 국내 산업용 전구시장의 약 35%를 점하는 탄탄한 중소기업으로 우뚝 서 있다.

30여년 동안 오직 한 우물만 파온 전문기업이다.

브라질.중국에 수출도 하고 중국 현지공장을 비롯, 2개 계열사를 두고 있는 국내 굴지의 전구회사다.

李사장 부부는 이 회사에서 같이 일한다.

그러나 아내가 사장이고 남편은 부사장이다.

남편 원필호 (元弼鎬.57) 씨는 우리 나라 수은등 개발의 개척자로 이 회사의 엔지니어 격. 아내는 밖에서 영업전선을 누비고 남편은 안에서 제품을 개발해 온 것이다.

그녀도 처음부터 억척 여장부는 아니었다.

여고시절에는 소설가를 꿈꾸는 문학소녀였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63년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에 입학했다.

그녀는 그러나 대학 1학년 때 절필을 결심하고 사업에 뛰어든다.

아르바이트로 번 돈과 주변에서 빌린 돈을 밑천으로 서울 면목동에 편물공장을 세워 운영했다.

전구회사와 인연을 맺은 것은 대학을 졸업한 65년. 돈을 빌려간 서울 원효로의 한 전극 (電極) 회사 사장이 경영난을 겪자 공장인수를 제의해와 넘겨받은 것이다.

전극은 백열전구의 부품이다.

이 회사가 태양전자의 모태가 됐다.

전극만 만들던 李사장은 76년 남편 元씨와 결혼하면서 元씨의 기술을 바탕으로 전구를 본격생산하기 시작했다.

영업 일선은 험난했다.

전구 판매를 위해 대기업체와 관공서를 직접 찾아 다니느라 수모도 많이 겪었다.

대기업체 사무실에 공장용 전구가 든 가방을 들고 들어가다 여직원들로부터 "잡상인은 출입금지" 라는 핀잔을 듣고 쫓겨 나기 일쑤였다.

그래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회사에서 쫓겨나면 간부들의 집으로 찾아가 부인들에게 읍소하기도 했다.

이런 노력 끝에 태양전자는 요즘 건설교통부.한국토지공사.한국도로공사.삼성.현대.대우 등 20여 대형 거래선을 확보하고 있다.

생산품도 고압 수은램프.나트륨 램프.메탈 할라이드 램프 등 10여종으로 늘어 났다.

올들어 가로등과 전봇대까지 생산하고 있다.

규모가 커지자 81년 공장을 김해 (2백30평) 로 옮겼고 85년 지금의 자리 (2천4백평) 로 확장 이전했다.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95년 수은램프를 전문으로 생산하는 ㈜태양수은등을 서울용산에 세웠다.

지난해 80만 달러를 투자해 중국 상하이에 상해한양전자유한공사 (上海韓陽電子有限公司) 를 설립했다.

"밤이 있는 한 전구시장은 영원하죠. 내가 만든 전구가 지구 전체를 밝힐 때까지 뛰어 다닐 참입니다. "

글 = 김상진, 사진 = 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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