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차 핵심 부품은 LG가 납품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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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호 16면

8월 4일 경기도 구리구장. LG와 히어로즈의 2군 경기에 오른손 투수 강철민(LG)이 선발 등판했다. 1회 초 첫 타자를 상대하던 그는 공 4개를 던진 뒤 오른 팔꿈치 통증을 호소하며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강철민의 1군행은 그렇게 다시 연기됐다. LG 관계자는 “이날 구단 고위 관계자도 강철민의 등판을 지켜봤다. 갑작스러운 강판에 모두 허옇게 질렸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같은 날 잠실구장 LG와 KIA의 경기. 4번 최희섭에 이어 5번으로 나선 김상현은 2안타를 기록했다. 김상현은 5일 현재 78타점을 기록하며 79타점을 기록 중인 롯데 이대호, LG 페타지니(이상 공동 1위)에 이어 부문 3위에 올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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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차가 잘나간다. 8월 이후 5일 현재 1위를 질주하고 있다. LG는 7위다. 플레이오프 커트라인인 4강에 들 가능성은 희박하다. LG는 지난 4월 19일 KIA에 김상현과 박기남을 내주고 투수 강철민을 데려왔다. 김상현, LG 팬들에겐 안타깝고도 묘한 심경을 불러일으키는 이름이다.

포기한 선수, 전력 외로 평가한 유망주를 다른 구단에 보냈는데 펄펄 난다. 반면 받아들인 선수는 여전히 부진하거나 부상 중이다. 안 되는 팀엔 이러한 사례가 매우 도드라지는데 올해에도 LG가 그렇다. 공교롭게 내준 선수는 팀을 상위권으로 만드는 데 일등공신 몫을 해내고 있다. 희비가 엇갈리는 LG와 KIA의 선수교환 대차대조표다.

쾌속질주하는 프로야구 KIA자동차의 부품은 현재 LG가 납품하는 격이다. KIA에서 활약 중인 국가대표(베이징 올림픽-제2회 WBC) 톱타자 이용규, 그리고 팀내 타점 1위 김상현은 모두 LG 출신이다. 톱타자와 중심타자를 모두 LG에서 수혈받았다. 반면 LG로 간 KIA 선수들은 대개 1년여 만에 사라졌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 2005년 봄. 당시 LG에 있던 이용규는 구단에 트레이드를 요청했다. 이용규는 광주일고 출신의 발빠른 타자 이대형이 타석에 들어서는 상황이 많아지자 더 이상 설 곳은 없다고 판단했다. LG는 그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KIA에서 FA 장기계약을 통해 영입한 홍현우와 이용규를 묶어 KIA로 보냈고, 소소경과 이원식을 받았다. 이용규는 2006시즌 최다안타 부문 1위를 기록했다. 지난해부턴 국가대표로 뛰면서 이름값을 높였다. 소소경과 이원식은 조용히 사라지고 말았다.
 
#올 4월, 김상현은 KIA 유니폼을 입었다. 2001년 KIA로 입단했다 이듬해인 2002년 LG로 트레이드됐던 김상현은 항상 유망주에 불과했다. 한 방 파워는 있었으나 항상 가능성에 머무른다는 평가를 받았다. LG는 2002년 당시 김상현을 영입하고, 방동민을 내줬다. 방동민은 한 경기 등판 뒤 은퇴했고, 김상현은 LG에서 6년 내내 그저 그랬다. 지난해까진 결국 승자 없는 트레이드였던 셈이다.

LG는 지난겨울 김재박 감독의 요청에 따라 자유계약선수(FA)로 정성훈을 영입했다. 그의 포지션은 3루수. 김상현과 겹친다. 수비와 공격 모두 정성훈이 더 낫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LG 코칭스태프는 ‘대체전력이 많기 때문에 김상현을 내줘도 손해볼 게 없다’고 판단했다. 그 판단, 재앙으로 돌아왔다. 현재까지는. 정성훈에게 가려 시즌 초반 20일 정도 뛰지 못하던 김상현은 곧바로 KIA 유니폼을 입자 바뀌었다.
 
#자, 이번엔 좀 더 굵직한 케이스. 트레이드 영입 뒤 성적 부진도 모자라 팀 내 불화·갈등까지 이어진 사례다. 2003시즌 FA로 4년간 KIA와 계약한 마무리 투수 진필중은 첫해 4승4패19세이브를 기록했다. 다음 시즌 LG가 진필중을 데려왔다. 그는 세 시즌 동안 3승14패15세이브를 기록했다. 2007년엔 아예 2군에만 있었다. 진필중은 부상이 없는데도 2군에 머물며 그에 해당하는 연봉 감액 조치를 받는 것은 부당하다며 LG에 소송을 준비했으나 결국 소 취하를 결정했다.

2005시즌 KIA에서 LG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마해영은 LG 이적 뒤 부진으로 2군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았다. LG는 야구규약 70조(연봉 2억원 이상 선수가 2군 강등 시 연봉 절반 삭감)에 근거해 연봉을 삭감했고 마해영은 지난해 9월 ‘규약 70조가 소급적용된 것’이라며 소송을 제기했는데 지난 6월 1심에서 승소했다. 마해영과 LG의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트레이드는 대개 제로섬 게임이다. 한 팀에 최악의 트레이드가 나오면 다른 팀에 최상의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모두 실패한 트레이드나 윈-윈 트레이드는 그다지 입에 오르내리지 않는다. 희비가 크게 엇갈리는 장사에 대해 사람들은 말하길 좋아한다. 트레이드=제로섬 게임이라고 하는 이유다. 그래서 LG와 KIA의 악연은 올 시즌 더 두드러진다.

이런저런 것을 감안하더라도 김상현-강철민의 트레이드는 LG의 손해였다. 이 트레이드는 4월 중순, 즉 시즌 시작과 함께 이뤄졌다. KIA는 즉시 전력감을 데려와 경기에 투입했다. LG는 2006년 팔꿈치 수술을 받은 뒤 1군 등판 없이 재활만 계속해 온 선수를 영입했다. 부상한 선수, 그래서 수술과 재활을 거친 선수의 최종 결과는 ‘돼야 되는 것’이다. 아무도 그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 강철민은 투구수 100개 내외를 소화했고, LG는 그의 복귀 준비가 끝났다고 자신했지만 다시 팔꿈치에 문제가 생겼다.
강철민-김상현을 맞바꿀 때 누가 가장 강력하게 목소리를 높였을까. 김재박 감독이었을까, 프런트였을까. 아니면 스카우트팀이었을까. 재활이 계속되는 선수가 올여름 이전에 올라올 수 있다고 판단한 건 누구였을까.

이효봉 xports 해설위원은 “김상현은 LG에서 직구만 노렸다. 그래야 살아남는다고 생각한 듯하다. KIA 이적 뒤 김상현은 황병일 코치의 지도 아래 변화구 공략에 눈을 뜬 것 같다. 슬러거 최희섭이 있는 KIA의 팀 상황에서 김상현에게 맞는 위치를 부여한 셈”이라고 최근 그의 활약을 설명했다.

김상현은 “LG에서와 KIA에서 달라진 건 크게 없다”고 줄곧 말하지만 이는 대외적인 멘트에 불과하다. ‘LG에서 이틀도 똑같은 폼으로 타석에 들어선 적이 없다’고 지인들에게 말했던 것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기량을, 능력을 펼 장이 마련되지 않은 셈이다.

A팀의 유망주로 머물던 선수가 새 시장, 새 터에서 만개하면 대승적으론 박수를 치는 게 옳다. 그러나 이 유망주가 원 소속 팀의 구조적인 약점 탓에 기지개를 켜지 못했다면 이 문제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고심해야 한다. 선수 파악과 코칭에 있어 심한 오작동이 있음을 알리는 사례이므로. 그게 김상현 트레이드가 LG에 다시 한번 주는 메시지 아닐까.

김재박 감독은 4일 강철민의 2군 피칭 뒤 조기 강판을 놓고 “강철민도 참 운이 따르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했다는데 이게 단지 운의 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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