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탕에서 ‘한국의 라데팡스’ 변신 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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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호 26면

1976년 문을 연 강남고속버스터미널. 도시 성장과 함께 개발 압력이 거세지고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이달 3일 유동성 확보 차원에서 비상장 계열사인 서울고속버스터미날㈜ 지분을 팔기로 하고 우선협상대상자로 사모펀드인 코아에프지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코아에프지는 1995년 설립된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다. 현대백화점은 차순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터 이야기 - 강남고속버스터미널 부지

금호 측이 파는 지분은 38.74%다. 나머지 지분은 한진 16.67%, 천일고속 15.74%, 한일고속 11.11%, 동부고속 6.17% 등이다. 이 회사는 서울 반포동에 위치한 터미널을 소유·운영하고 있다. 터미널 부지는 8만6725㎡로 공시지가만 8000억원에 이른다. 시가로는 1조원을 웃돌 것으로 추산된다. 땅을 개발하려는 목적이 아니면 지분을 매입해 봤자 밑지는 장사다. 이 회사의 지난해 매출은 258억원, 순이익은 68억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곳은 9호선이 새로 개통되고 한강르네상스 계획과도 맞물려 금싸라기 땅으로 바뀌고 있다. 터미널을 이전하는 것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도시계획시설 해제 권한을 가진 서울시가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초구 이재홍 도시계획과장은 “터미널 이전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으므로 터미널 기능을 유지하며 복합 개발하는 방안을 구상해 보는 단계”라고 말했다.

서초구에서는 이미 2006년 11월부터 터미널을 시 외곽으로 옮기고 기존 터미널 부지를 프랑스 파리의 ‘라데팡스’ 같은 복합단지로 개발하겠다는 구상을 밝혀 왔다. 라데팡스는 58년 프랑스 파리 서부 외곽에 건설된 현대식 상업지구로 빌딩과 보행공간 등이 조화를 이룬 신시가지다. 그러나 터미널을 옮기면 이용객의 불편이 따르는 데다 호텔·백화점 등 복합시설이 이미 들어서 있어 개발 명분도 얻기 힘들었다.

구청 관계자는 “박성중 현 구청장의 공약사업으로 기본구상 단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서울시의 대규모 부지 개발 대상으로 신청하지도 않았다. 이 과장은 “이미 건물이 들어서 있으므로 신청 대상으로 적절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애초 이 부지는 유통업체들이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토러스투자증권은 올 6월 “강남 상권에서 입지 강화를 노리는 신세계·롯데쇼핑·현대백화점 등 유통 3사의 인수 가능성에 시장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는 기업구조조정회사가 일단 인수전의 우위를 차지했다. 차순위인 현대백화점은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업체로 평가받는다. 개발까지는 걸림돌도 있다. 한진과 동부건설 등의 지분을 추가로 확보할 경우 비용이 적지 않게 들어가고, 상가에 입주한 상인에게 지급하는 보상비와 건물 공사비 등도 만만찮기 때문이다.

이곳이 고속버스터미널 부지로 결정된 것은 75년 6월이다. 5만 평 부지 중 동쪽 3만 평은 고속버스터미널, 서쪽 1만 평은 시외버스터미널 등으로 계획됐다. 고속버스업체 12개 중 9개가 출자한 ‘서울강남고속버스터미날㈜’이 그해 11월 설립됐다. 터미널 공사가 시작된 것은 76년 4월, 1차 준공된 것은 9월이었다. 77년에는 모든 고속버스터미널이 이곳으로 합쳐졌다.

회사 이름도 79년 ‘강남’이 빠진 ‘서울고속버스터미날㈜’로 바뀐다. 주변 아파트 단지는 터미널이 세워진 뒤 하나둘 들어선 것이다. 나중에는 주민들이 터미널 이전을 요구했다. 손정목 전 서울시도시계획국장에 따르면 이 부지는 원래 여러 사람이 소유한 사유지였다. 부지 북쪽으로는 자그마한 내가 흐르고 있었고, 여름철에 비가 오면 쉽게 물에 잠기는 땅이었다.

서울시에 따르면 터미널이 있는 반포동은 이 일대에 ‘물이 서리서리 굽이쳐 흐른다’하여 ‘서릿개’라 하였고, 이를 한자로 ‘반포(蟠浦)’ 또는 ‘반포(盤浦)’로 표기한 데서 유래했다. ‘서리다’라는 말은 ‘빙빙 둘러서 포개어 놓는다’와 ‘물안개와 같은 것이 잔뜩 끼다’라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프랑스인들이 많이 거주해 ‘리틀 프랑스’로 불리는 서래마을은 서릿마을·서애마을 등으로도 불리는데 반포마을과 뜻이 같다는 풀이가 가능하다. 서울시는 당시 이곳 지주들을 불러 서울시가 가지고 있는 다른 위치의 체비지와 교환해줌으로써 이곳을 시유지로 만들었다. 굽이쳐 흐르는 고속도로를 타고 버스들이 모이는 이 땅에 앞으로 어떤 요술이 펼쳐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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