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포럼]대기업 부채축소…'자율에 맡겼더니 헛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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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부채비율을 도저히 200%로 줄일 수 없다" "재벌총수의 의지만 있으면 충분히 가능하다" 내년말까지 달성키로 한 부채비율 2백% 감축목표를 두고 정부의 '당위론' 과 재계의 '현실론' 이 첨예하게 맞부딪혔다.

지나친 부채의존 구조가 경제위기를 초래한 주원인중 하나라는 게 정설인 상황에서 부채감축이란 목표에는 누구든 반대하는 사람이 없다.

다만 문제는 언제나 그렇듯 방법과 기한. 각계 전문가들이 펴는 양쪽의 논리와 함께 새로운 대안은 없는지를 찾아본다.

편집자

▶정부가 나설 수 밖에 없다 = 재벌들의 과다부채는 은행의 부실화로 연결되어 한국경제 전체를 부도위기로 몰고 온 주범이다.

관치금융도 문제였지만 재벌들이 수익성이 아닌 물량중심으로 방만하게 경영한 것이 주원인이다.

경제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다같이 고통분담을 해야하는 이때에 재벌들이 부채비율 감축요구를 피하려 할 수 없다.

정부는 부채비율감축이 은행과 재벌들간에 자율적으로 추진되기를 기다려 왔다. 그러나 재벌들은 아무런 노력을 보이지 않았다.

개혁분위기가 고조되었던 봄에만 하더라도 재벌들이 자산과 지분매각 등을 통해 270억달러의 외자를 들여오겠다더니 이제까지 들여온 외자가 45억달러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니 정부가 은행의 건전성 유지차원에서 은행의 빚을 가장 많이 지고 있는 재벌들에 대해 부채비율을 낮추도록 채권은행들을 독려하는 것이다.

▶그룹기준으로 부채비율 200%는 꼭 지켜야한다 = 200% 목표비율은 하나의 지침으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금감위에서 채권은행과 재벌들이 재무구조개선약정을 맺을때 어떤 지침이 필요했는데, "부채비율이 150%, 190% 되는 미국.일본기업들과 경쟁하려면 적어도 200% 정도로 낮춰야 하지 않느냐" 고 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모든 산업, 모든 기업에 획일적으로 적용하라는 것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산업별 특성과 기업의 채무상환능력을 고려해, 신축적으로 적용할 것을 기대했다.

정부가 얘기한 것은 그룹별로 부채비율을 평균 200%로 낮추라는 것이었다.

때에 따라서는 일부 계열사는 이보다 높을 수도 있고 또 낮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룹별로는 평균 200%가 꼭 지켜져야 한다.

▶특정산업을 제외시킬 수 없다 = 종합무역상사, 건설업 등 일부 산업에서 부채비율이 높을 수 밖에 없음은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 산업을 부채비율 감축대상에서 빼 주거나 또 이들 산업에만 부채비율 감축목표를 일률적으로 다르게 적용하라고 할 수 없다.

이것 저것 다 빼자는 얘기는 부채비율을 사실상 줄이지 않겠다는 얘기나 다를 게 없다. 부채비율 감축에는 예외가 있을 수 없다.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해낼 수 있다 = 재벌들이 부채비율을 200%로 충분히 낮출 수 있다.

재벌들이 지금 부채비율 200%로 감축하기 힘들다는 것은 처음부터 그럴 의지가 없어서이다. 재벌총수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단시간안에 가능한 목표다.

가장 문제는 정부가 몰아부치니까 한계기업 몇개를 팔아 적당히 넘어가려 하는 것이다. 총수가 경영권을 내놓을 생각이 없어서다.

만일 재벌들이 진정으로 부채비율을 감축할 생각이 있다면, 한계기업 뿐 아니라 값이 나가고 또 원매자도 많은 우량기업도 내다 판다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

▶부채비율 계산법 조정은 장부조작이다 = 부채비율 계산법을 바꾸자는 요구는 한마디로 장부를 조작해 수치로만 부채비율을 줄인듯이 보이겠다는 얘기다. 중요한 것은 숫자상의 부채비율이 아니라 사실상의 부채비율이다.

이자를 내지 않는 부채를 계산에서 빼자고 하지만, 이자를 내지 않는 부채도 결국은 해당기업이 언제가는 변제의무를 지는 것이므로 부채로 간주해야 한다.

부채성 충당금도 마찬가지다. 일부 국가에서 이를 자본으로 간주한다고 하나, OECD등에서는 부채로 간주한다. 따라서 이것도 부채에 포함해야 한다.

자산재평가도 유사한 문제를 안고 있다. 외국에서는 인정하지 않는데,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과거부터 관행상 이를 인정했을 뿐이다. 자산가치가 올라간다고 해서 기업에 자금사정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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