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사정 막바지 점검]검찰수사 무엇을 남겼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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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박상천 (朴相千) 법무부장관이 지난 20일 외신기자회견에서 "지금과 같은 집중적 사정은 10월말까지 마무리짓겠다" 고 밝힘에 따라 검찰의 정치권 사정은 일단 소강국면으로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검찰 관계자도 "이미 벌여놓은 사정 (司正) 수사 마무리에도 많은 인력이 필요해 현 단계에서 추가 사정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며 朴장관의 발언을 뒷받침하고 있다.

새 정부 들어 많은 논란 속에 계속돼온 검찰의 정치권 사정 현황과 특징, 앞으로의 전망을 정리한다.

박상천 법무부장관은 "비리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았거나 내사중인 여야 정치인은 19명" 이라며 "정당별로는 한나라당 14명, 국민회의 4명, 자민련 1명" 이라고 밝혔으나 이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인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같은 검찰 사정 결과에 대해 여권은 "지금까지 성역으로 남아있는 정치권을 수술하는 획기적인 개혁조치" 라고 평가하는 반면 야권은 "야당을 붕괴시키기 위한 표적 사정" 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개혁을 내세웠던 문민정부 실세들이 저지른 비리를 상당부분 캐냈다는 점에서 일단 긍정적 평가를 내릴 수 있다.

이와 함께 정치권 사정은 대부분의 '검은 돈' 을 정치자금으로 포장해 죄의식 없이 받아온 정치인들에게 더이상 음성적 자금수수 행위가 성역으로 남을 수 없다는 것을 일깨워준 역할을 했다.

검찰은 앞으로도 정치인들이 대가성 있는 자금을 받는 것은 물론 정치자금법이 개정된 지난해 11월 14일 이후의 경우 후원회 등을 통한 합법적 방법을 통하지 않은 정치자금 모금도 사법처리 대상이라는 입장이다.

만약 검찰이 이같은 의지로 앞으로 법 집행만 분명히 한다면 정치인들의 음성적 자금조달 관행을 바꾸는데 상당한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새 정부 검찰의 정치권 사정은 형평성 시비 등 적지 않은 부작용을 낳았다.

사법처리 기준의 불명확과 형평성 시비가 대표적 부작용이다.

경성비리 사건 재수사에서 정대철 (鄭大哲) 국민회의 부총재.김우석 (金佑錫) 전 건설교통부장관은 4천만원씩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鄭부총재는 1차 수사때와 혐의사실이 크게 다르지 않은데도 '무혐의' 에서 '구속' 으로 바뀌었다.

金전장관도 1차 수사때 사법처리 대상에서 제외했다가 재수사때 구속함으로써 검찰의 사법처리 기준에 일관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사정 대상이 주로 야권 인사에 집중됐다는 점도 형평성 시비를 불러일으켰다.

수사대상 정치인 20여명중 여당 소속은 鄭부총재를 비롯, 김운환 (金운桓).정호선 (鄭鎬宣).김종배 (金宗培).채영석 (蔡映錫) 의원 등 5명뿐이다.

김운환의원도 구여권으로 분류하는 게 타당하다.

반면 야당측은 우연찮게도 한나라당 이회창 (李會昌) 총재 계열이 많이 포함돼 야당의 반발을 샀다.

우선 서상목 (徐相穆).백남치 (白南治) 의원은 대선때 각각 기획본부장과 조직본부장을 맡았던 李총재의 핵심 측근이다.

김윤환 (金潤煥) 전 부총재와 이기택 (李基澤) 전 총재권한대행.황낙주 (黃珞周) 전 국회의장도 대선때 李총재를 위해 적극 활동한 사람들이다.

이에 비해 한나라당을 탈당, 자민련에 입당한 김종호 (金宗鎬) 의원에 대해서는 검찰이 수사에 소극적이다.

검찰은 金의원이 동아건설로부터 96년 4.11 총선 전 2억원을 받은 혐의를 포착했지만 "돈을 받은 시점과 최원석 (崔元碩) 회장과의 개인적 관계를 고려할 때 정치자금으로 보인다" 며 무혐의 처분할 예정이다.

이 때문에 가장 먼저 한나라당을 탈당해 여당 의원으로 변신한 점이 검찰의 사법처리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돌고 있다.

또 청구로부터 돈을 받은 정치인들이 다수 거론됐으나 5억원을 받은 이의근 (李義根) 경북지사 등 대부분은 무혐의 처분을 받아 검찰의 사법처리 잣대가 모호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검찰 고위 관계자들은 사정의 형평성 시비에 대해 "검은 돈은 권력을 따라다니는 속성이 있기 때문에 구여권 비리가 많이 적발된 것" 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 의 부정에도 관심을 가지는 것이 권력의 부패를 막는 길" 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정철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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