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콘정치] 장외투쟁, 시작은 창대했으나 그 끝은 ‘빈손’이더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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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모든 일엔 끝이 있는 법입니다. 싸움도 마찬가지입니다.

근래 민주당이 여의도 국회 밖을 떠돌고 있습니다. 이른바 장외투쟁입니다. 6일에도 광주를 찾았습니다. 정세균 대표는 그곳에서 “민주당은 ‘언론악법’이 원천 무효란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며 “승리의 그날까지 일절 생각하지 않고 무효화 투쟁에 매진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당분간 장외투쟁을 계속하겠다는 뜻입니다.

사실 장외투쟁은 야당으로선 일정 정도 불가피한 투쟁방식일 겁니다. 원내에서 자신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는 장외투쟁 외엔 딴 도리가 없다고 느낄 테니까요. 역대 야당들이 그랬습니다.

야당 지도자에겐 리더십을 공고히 할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1970년대 야당인 신민당의 김영삼 총재, 노무현 정부 시절의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도 장외투쟁을 통해 강한 리더십을 선보였습니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도 한나라당 총재 땐 ‘장외투쟁 전문가’였습니다. 하지만 그림자도 짙습니다. 여야 입장 차가 분명해 장외투쟁이 길어질수록 말입니다.

정치권 내의 피로도가 높아집니다. 더불어 민심도 이반됩니다. 야당 내에서 ‘등원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지곤 합니다.

2000년대 초반 장외투쟁을 이끄는 이회창 총재를 향해 박근혜 당시 부총재가 “등원해야 야당이 산다”고 목소리를 높인 일도 있습니다. 그런 박근혜 전 대표가 자신이 대표를 하던 시절 50여 일간 국회 밖에 머물자 당내 소장파가 각을 세웠습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도 비슷한 행로를 겪었습니다. 야당 총재 시절 단식 투쟁까지 했던 그는 근래 민주당을 향해 “야당은 기본적으로 국회에 들어가서 싸워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대개 장외투쟁은 야당의 전격 등원 선언으로 끝나곤 합니다.

“8개월간 국회 불출석 투쟁을 통해 집권당의 반성을 촉구했으나 이제는 이를 지양하고 투쟁의 고지인 의사당을 향해 전진키로 했다.” 68년 신민당의 유진산 당수가 했다는 말입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야당 지도자 시절에, 이회창 총재가 한나라당 총재 시절에 여러 차례 했던 말이기도 합니다. 정세균 대표도 지난달 “새로운 각오와 결의로 대여투쟁에 임하고자 한다”며 사실상 ‘빈손’으로 등원했습니다.

물론 야당이 성과를 거둘 때도 있습니다. 지난해 개원 협상에서 민주당은 가축법 개정을 이끌어 냈습니다. 미국산 쇠고기 파문이란 민심 탓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90년 DJ가 개원 협상에서 이긴 건 지방자치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명분에서 앞섰기 때문이란 게 당시 정치권의 평가였습니다. 민주당의 이번 장외투쟁은 어떻게 끝날까요?

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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