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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빛만 봐도 아니까 …’ 부쩍 늘어난 미술 공동창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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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부부 작가 서정국(左), 김미인씨가 함께 만든 ‘신종 생물’들 앞에 서 있다. 지금은 고등학생이 된 첫 아이가 어릴 때 조물조물 빚었던 장난감에서 아이디어가 시작됐다. 컴퓨터 작업, 텍스트 작성, 설치 등 협업으로 완성도를 높일 수 있어 팀 작가가 좋단다. 서울 안국동 사비나 미술관에서 22일까지 볼 수 있다. [안성식 기자]


미술가 서정국(51), 김미인(44)씨는 1989년 처음 만나 그해 결혼했다. 유학을 준비하던 김씨는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공부 중이던 서씨에게 도움을 받으며 가까워졌고 함께 독일로 떠났다. 그때는 설마 같은 작업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남편은 동양의 정서를 담은 대나무 연작, 아내는 자연을 보듬는 사진 작업으로 각자의 영역을 넓혀가던 패기 만만한 젊은 작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20년 세월이 흐른 지금, 이 부부는 경기도 의왕시 집에서 한 주제에 머리를 맞대고 있다. ‘희한한 동물들’ 이다. 나비의 날개를 단 펭귄, 공룡의 머리를 붙인 닭, 얼굴은 원숭이인 파리 등에 시간과 열정을 쏟는다. 아내가 작은 모형을 만들면 남편은 또 다른 동물 아이디어를 낸다. 아내가 색을 결정하면 남편은 제작에 들어간다. 때로는 역할을 바꾸기도 한다. 이렇게 해서 크게는 사람 키만한 동물 조각들이 탄생한다. 2002년 시작한 ‘신종 생물’ 연작이다.

서씨는 “함께 작업하는 ‘팀 작가’들이 부쩍 늘었다”고 설명했다. “독일에서 그룹으로 활동하는 작가들이 많아 놀랐는데, 지금은 그 문화가 한국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고 말했다. 아내가 거들었다. “작가라고 작업만 할 수는 없는 시대”라는 것이다. “컴퓨터 작업, 텍스트 작성, 설치 등에 에너지를 많이 써야 해서 동료가 있으면 작업의 완성도가 높아진다”고 했다. 작품에 쓰이는 매체가 다양해져 서로 다른 분야의 전문가가 필요해진 것도 작가들이 ‘솔로’보다 ‘팀’을 선택한 이유다.

◆같은 집에 살며=요즘 서울 서소문동 서울시립미술관의 외벽을 빛으로 물들이고 있는 ‘뮌(mioon)’ 또한 부부 작가 그룹이다. 최문선(38)·김민선(38)씨는 개인 작업 대신 팀으로만 미디어 아트 작품을 만들고 있다. 이번 ‘라이트 월’ 전에는 가로 60m, 세로 20m의 미술관 벽면에 조명을 바꿔가며 곰을 주인공으로 한 동화를 만들어냈다. 이 작품은 다음달 20일까지 수~일요일 밤 9시 30분에 볼 수 있다. 최씨는 “무엇보다 두 사람 생각이 같았기 때문에 2002년부터 팀 작업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개인보다는 사회 문제에 집중하는 ‘뮌’의 스타일이 공통 관심사 속에서 잡혔다.

◆같은 관심사에 집중해=같은 세대의 경험 또한 작가들을 묶는 끈이다. 김원화(29)·현창민(32)씨는 ‘김과현씨’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이다. 1980년대에 ‘국민학교(현 초등학교)’를 다닌 이들의 머리 속에는 ‘우유 급식’이 똑같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왜 우리는 먹기 싫은 우유를 의무적으로 마셔야했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2007년 ‘바나나맛 우유’ 시리즈를 시작했다. 이 제품이 ‘우유 소비 촉진을 위해 서구의 상징인 바나나 향을 첨가한 우유’라고 보고 빈 통으로 여러가지 형상을 만든다. 이렇게 빚은 로보트와 탱크 또한 이들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한다.

이밖에도 영상을 다루는 그룹 ‘믹스라이스’는 조지은·양철모씨가 이주 노동자에 대한 관심으로 만든 팀이다. ‘플라잉 시티’는 다수의 작가들이 도시 문화에 대한 비판적 접근으로 모인 그룹으로 여러 공공미술에 참여하고 있다.

외국의 공동 창작 역사는 좀 더 길다. 퐁네프 다리를 천으로 덮는 등의 활동으로 유명한 크리스토 & 장 클로드 부부는 1961년 ‘팀 작가’로 데뷔했다. 퍼포먼스 작가들인 ‘길버트와 조지’도 같은 시기에 활동을 시작했다. 사비나 미술관의 객원 큐레이터인 강재현씨는 “팀 작가들은 확실한 주제의식을 가지고 모이기 때문에 대부분 완성도가 높은 작품을 내놓는다”며 “앞으로는 공동창작이 더 활성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강씨가 기획한 공동창작전 ‘더블 액트’는 22일까지 열린다.

김호정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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