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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는 규제를 좋아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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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사업자들이 가격·요금이나 서비스 내용을 비슷하게 가져가는 행위는 담합이다. 소비자 이익을 침해하는 담합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제재한다. 공정위는 그러나 감독 당국이 강하게 틀어쥔 업종에서는 담합 여부를 따지지 않았다. ‘빨간 불’이어서 멈춰 서 있던 업체들을 ‘제각각 길을 건너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벌하는 격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이 고려돼 보험·통신 등 규제업종은 담합 조사·제재에서 제외됐었다.

보험·통신 업체들이 담합 여부로 조사받게 된 것은 규제가 풀려 업체들이 자유롭게 움직일 여지가 넓어진 다음부터다. 공정위는 자유화 이후 이들 업종에서 담합을 잇따라 적발해 과징금을 매겼다. 업체들은 이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하곤 했다.

이런 악순환은 감독 당국과 공정위의 업무에 상충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예를 들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등 감독 당국은 보험사들의 경쟁이 과열되지 않도록 행정지도를 벌인다. 업체들이 지나치게 경쟁한 나머지 가입자에게 보험금을 주지 못할 지경에 이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감독 당국이 제시한 가이드라인을 지키는 보험사들은 공정위로부터 담합했다는 판정을 받을 공산이 커진다.

현재 대법원에는 손해보험사들이 공정위를 상대로 제기한 상고가 올라가 있다. 삼성화재·현대해상 등 9개 손보사는 일반손해보험에서 담합했다는 공정위의 2007년 9월 의결과 모두 407억원의 과징금 부과에 맞서 소송 절차를 밟아 왔다. 손보사들이 담합했는지, 아니면 감독당국의 행정지도에 따라 함께 움직인 것인지는 대법원이 판가름해줄 것이다.

담합 과징금 부과에 반발한 보험사들의 소송이 끊이지 않자 공정위는 2007년 11월에 금감위와 업무협약을 맺었다. 업무협약에서 공정위는 금융감독 당국이 행정지도한 행위는 담합 시정조치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그러나 협약이 잘 운영된다는 평가는 들리지 않는다. 익명을 요구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협약 이후 공정위가 금감위 의견을 반영하게 됐다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호열 공정거래위원장이 취임했다. 정 위원장은 한국경쟁법학회장으로 활동한 공정거래 전문 학자다. 동시에 그는 보험학회 차기 회장으로 내정됐을 정도로 보험업계에 대한 이해도 깊다. 정 위원장이 ‘감독 당국 따라가다 공정위한테 걸리는’ 보험업계의 고충을 헤아리리라고 기대되는 이유다.

지난해 11월 경쟁법학회는 ‘보험사업에 대한 공정거래법의 집행과 그 한계’를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이황 고려대 교수는 이렇게 제안했다. “공정위는 처벌 위주의 (사후적) 법 집행보다는 가급적이면 기관 간 협조로 사전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백우진 이코노미스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