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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극복 생활수기 당선작 발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경제난은 누구에게나 닥친 상황이지만 그 어려움을 어떻게 받아들였느냐에 따라 개개인의 삶은 판이하게 달라진다.

꿋꿋이 다시 서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쉽게 무너지는 사람도 있는 것. 한국소비생활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IMF극복 생활수기 공모' 당선작들은 어려움을 건강하고 따뜻하게 이겨낸 이들의 체험담이어서 귀감이 될 만 하다.

금상을 수상한 조문호 (55.충남천안시성정2동) 씨는 회사가 부도나 실직했다가 현재 컴퓨터 방문교사로 일하고 있는 중. 지난해 6월 회사가 부도 나자 기획홍보실장이던 조씨는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됐다.

실직 사실을 숨기고 시립도서실로 출근하던 그는 딸 친구를 만나 '못된 짓 하다 들킨 것처럼' 당황하기도 했다.

2개월후 마음을 수습하고 1인 컴퓨터 방문지도사가 되기로 했다.

컴퓨터를 어느 정도 다룰 수 있는데다 지본이 필요없다는 계산에서였다.

아내에게 실직을 고백하고, 광고전단을 만들어 아파트 경비와 씨름하며 붙이고 다녔다.

그리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생활이 시작됐다.

그간 조씨가 가르친 학생은 1백여명. 연봉 2천만원 정도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

조씨는 '또 한번의 변신을 꿈꾸고 있다.

분명 내가 할 수 있는 틈새시장을 찾아낼 수 있을 것' 이라고 말한다.

은상을 받은 조현미 (29.인천시계양구계산3동) 씨는 아버지의 부도, 본인의 실직, 부모님의 노점상 시작 등 최악의 상황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단돈 3백만원으로 결혼식을 치룬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각종 중고품 가게를 뒤져 혼수를 사고, 그래도 구하지 못한 것은 생활정보지의 '팝니다' 코너를 통해 마련했다.

예단은 이불 한 채와 구두티켓 한 장씩으로, 예물은 가지고 있던 순금반지를 새 디자인으로 바꾸는 것으로 끝냈다.

예식장은 주중에 무료로 빌려주는 곳을 찾아냈다.

"식이 진행되는 동안, 손수건을 눈에서 떼지 못하는 엄마를 뵈니 죄송스럽고 슬펐으나 내 자신에 대한 자랑스러움에 가슴은 뿌듯했다" 고 조씨는 고백한다.

황애선 (38.경기도평택시서정동.동상) 씨는 칼국수가게 여주인. 부도 직전까지 그의 남편은 꽤 잘 나가는 중소전자업체 사장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직접 칼국수 배달 오토바이를 몰고 다닌다.

장난 전화에 속아 칼국수 세 그릇을 배달하러 나갔다 돌아온 남편과 퉁퉁 불은 칼국수를 눈물에 말아 먹기도 했지만 황씨는 끝까지 명랑함을 잃지 않는다.

부도를 당한 아들 내외를 바라보며 가슴 아파하면서도 "노숙자가 매일 늘어난다는데 우리 가족은 한지붕 아래 살고있으니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살자" 고 충고하는 (함정금.70.강원도 원주시 태장2동.장려상) 할머니도 있고, 새벽잠을 쫓으며 신문배달원으로 나서 '제2의 인생' 을 구가하는 주부 (이상희.34.서울시노원구상계1동.은상) 도 있다.

막노동을 하면서도 '일할 수 있다는 것만도 행복' 이라며 노동의 가치에 새삼 눈 뜬 전직 사무직 중년 (이신창.49.경기도군포시산본동.장려상) 도 있다.

이들 수상작에게는 금상 70만원.은상 50만원.동상 30만원.장려상 10만원의 상금이 각각 주어진다.

한국소비생활연구원은 수상작으로 선정된 13편의 작품을 수기집에 실어 시상식 (23일 오후2시 (주) 태평양 10층 강당) 참석자에게 무료배포한다.

이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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