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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수종양 조선족 이령양 삼성서울병원서 무료수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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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되다니 꿈만 같아요. " 꽃다운 나이에 하반신이 마비될 뻔한 조선족 소녀가 고국의 의술로 새 삶을 찾았다.

중국 옌벤 (延邊)에 사는 이령 (李玲.17) 양에게 병마가 닥친 것은 4년전. 방과후 바이올린 연습과 영어공부에 열중하던 그에게 갑자기 볼펜을 떨어뜨리는 등 양손과 발에 마비증세가 나타났다.

놀란 어머니 천애옥 (千愛玉.43.옌벤방송국 직원) 씨는 그를 데리고 인근 병원을 찾아 다녔지만 X - 레이 시설도 없는 낙후된 병원시설로는 원인조차 알기 어려웠다.

"목부분이 뻣뻣한 걸 보니 공부하는 자세가 좋지 않아 그런 것 같다" 는 말이 고작이었다. 증세는 더욱 심해져 95년엔 혼자 걷지도, 옷을 입지도 못하게 됐다.

척수종양이란 병명도 창춘 (長春)에 있는 병원에서 겨우 알아냈다.

한달 월급이 8백위엔 (한화 약8만원)에 불과한 千씨였지만 딸을 위해 한방.양방 등 용하다는 치료는 다 받았다.

그러나 차도는 없었다.

李양의 딱한 처지를 알게된 학교와 옌벤방송국 등 조선족 사회에서는 성금으로 3만위엔 (한화 약3백만원) 을 모아주기도 했다.

그러나 상해의 유명한 병원을 찾아 수술을 받고자 은행에서 돈을 찾아 나오던 千씨는 1만위엔을 소매치기 당하고 만다.

이를 안타깝게 여기던 한 중국의사의 추천으로 千씨는 3년전 삼성서울병원에 무료수술을 청하는 편지를 띄웠다.

"인생은 한자락 스쳐가는 꿈결이라지만 15살은 너무너무 짧은 찰나가 아닐까요. …만분의 일의 희망이라도 있다면 제발 받아 주십시오. " 편지를 받아든 삼성서울병원측은 그해 6월 척수종양 절제수술을 권했지만 부작용을 우려한 李양측은 혈관 차단수술만 받고 돌아갔었다.

그러다가 최근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자 다시 삼성서울병원을 찾은 것. 신경외과 김종현 (金鍾鉉) 과장의 집도로 지난 9일 6시간에 걸쳐 척수종양을 제거하는 대수술을 받은 그는 일주일 만에 운동신경 장애가 완치돼 현재 보행연습을 할 정도로 빠른 회복을 보이고 있다.

金과장은 "척수에 생긴 종양이 너무 커져 척수의 중심부가 찌그러지고 비어있는 척수공동증 (空洞症) 이 왔다. 현미경을 이용한 고난도 수술이었으나 성공적" 이라고 말했다.

활짝 웃는 얼굴로 걷는 연습을 하는 李양을 보며 千씨는 "이 고마움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라며 눈물을 떨어뜨렸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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