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에세이]둥젠화의 '3無 5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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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무사 (無私).무원 (無怨).무괴 (無愧) . 둥젠화 (董建華) 초대 홍콩특구 행정장관이 지난해 7월 취임하면서 스스로 다짐했다는 세가지 덕목이다.

매사에 공심 (公心) 을 내세우고 사욕 (私慾) 을 버리면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남을 원망하는 마음이 없어지며 따라서 부끄러움도 없게 된다는 얘기다.

그러나 취임 16개월째인 지금 홍콩에서 董장관의 '3무 (無)' 를 칭찬하는 소리는 들어보기 어렵다.

대신에 실색 (失色).실망 (失望).실업 (失業).실패 (失敗).실공 (失控) 의 '5실 (失)' 을 지적하는 비아냥이 무성하다.

홍콩의 올해 회사 파산건수는 월평균 61건으로 지난 89년 이래 최고치를 기록중이다.

국제 신용평가기관들은 홍콩은행들의 신용등급을 잇따라 하향조정 중이다.

지난 7일 董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98, 99년도 시정보고' 행사는 그에 대한 '낙제점 장관' 여론이 표면화된 자리였다.

"특수 (特首.행정장관의 별칭) 의 통치능력에 의문을 표시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에 대한 견해를 밝혀 달라" 는 등의 질문에 董장관은 몇번이고 얼굴을 붉혀야 했다.

시정보고회가 열린 홍콩 입법회 건물 밖에서는 '특수의 시정활동을 감시하는 민간단체 (民間監察特首施政活動)' '반실업 반빈궁 연맹' 등 시민단체들이 회의시작 전부터 '5실' 을 규탄하는 대자보를 길바닥에 붙여놓은 채 등원하는 의원들을 향해 '구걸시위' 를 벌였다.

의원들은 이들의 서슬에 밀려 고액권인 5백홍콩달러 (약 9만원) 짜리 지폐를 깡통에 던져넣어야 했다.

홍콩의 경제위기가 董장관의 잘못만은 아닐 것이다.

그는 '3무' 를 성실히 수행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도자는 결과로 얘기하는 것이다.

경제난의 한파를 가장 먼저 절감하는 서민들 앞에서 최소한 '무괴' 를 자부할 수는 없을 듯하다.

홍콩=진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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