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필텔레콤·아이네트등 벤처 지분팔아 속속 돈방석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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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극심한 불황 속에서도 첨단기술과 참신한 아이디어로 수십억~수백억원의 '떼돈' 을 버는 벤처기업인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회사를 설립, 신제품으로 실력을 인정받은 뒤 외국이나 국내 대기업에 비싸게 팔아넘기는 것이다.

휴대폰.무선호출기 (삐삐) 전문 벤처업체인 어필텔레콤의 이가형 (李佳炯) 사장은 16일 미국 모토로라에 4천5백만달러 (약 6백억원) 를 받고 이 회사 지분 51%를 넘겼다.

李사장은 자신의 지분을 팔아 수백억원을 벌었고 직원들 역시 적잖은 돈을 손에 쥐었다.

게다가 李사장은 당분간 어필의 경영도 계속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자본금 60억원의 이 회사는 창업 4년밖에 안됐지만 처음부터 광역무선호출기 등으로 눈길을 끌면서 지난해 매출 5백41억원을 기록했다.

특히 올해는 79g의 초경량 휴대폰을 출시, 50만대가 팔리면서 단숨에 국내 휴대폰시장의 8%를 점유할 정도로 인기를 모으면서 매출이 1천8백억원으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자 모토로라의 관심을 끈 것. 한국모토로라 정갑근 상무는 "어필은 중소기업이지만 이동통신분야에서 기술력이 뛰어나 전략적 제휴와 투자를 결정했다" 고 설명했다.

李사장도 "집중적인 연구개발이 성공의 비결" 이라고 말했다.

국내 인터넷분야의 선두주자인 아이네트 (자본금 43억원) 도 지난달 28일 미국 4위인 인터넷서비스업체 PSI넷에 3천5백만달러에 인수됐다.

이 회사 허진호 (許眞浩) 사장은 스톡옵션 계약으로 받은 주식을 팔아 3백만달러 (약 40억원) 정도를 손에 쥔 것으로 전해졌고, 그 역시 계속 경영을 맡기로 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아이네트가 지난해 1백29억원 매출에 34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거액에 팔린 것. 이는 미국측이 아이네트의 '미래성' 을 높게 평가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PSI넷 관계자는 "한국의 인터넷업계 사정을 잘 아는 許사장을 유임시키는 것이 아이네트의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 이라고 설명했다.

PSI넷측은 許사장에게 아이네트 경영을 맡기는 것은 물론 아시아지역 총책임자로 내정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규모는 작지만 국내 웹비즈니스 벤처기업의 선구자인 한국디지탈라인 (옛 웹인터내셔널) 도 주목거리다.

지난 94년 한국디지탈라인을 세운 윤석민 (尹錫敏) 부사장은 한달전 자신의 지분 (48%) 중 28%를 동종업계의 영진IC에 매각하고 14억원 이상을 챙겼다.

2대주주인 尹사장은 경영권을 영진측에 넘기고 자신은 기술담당 부사장으로 내려앉았다.

이밖에 삐삐벤처인 팬택의 박병엽 (朴炳燁) 사장도 미국의 모기업으로부터 최근 5백억원 이상의 매각조건을 제시받았지만 이를 거부했고, 지난해 10월에는 국내 컴퓨터바이러스업계의 대부인 안철수 컴퓨터바이러스 연구소도 미국의 맥아피사로부터 1천만달러의 매각제안을 받았지만 고사했다.

고려대 경영대 장세진 (張世進) 교수는 "아무리 불황이라도 우수한 기술력을 보유한 벤처기업은 얼마든지 기회가 있다" 면서 "이런 중소기업 기술력과 대기업 자금이 결합되면 더욱 경쟁력이 강해질 수 있다" 고 말했다.

이민호.김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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