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에세이]자녀시위 옹호하는 프랑스 부모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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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최근 청와대로 교육제도 개선을 건의하는 전자우편을 보냈다가 졸지에 무기정학 처분을 받은 우리나라 고등학생이 지금 프랑스에 와 있다면 틀림없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가 된 기분일 것 같다.

고등학생들이 집단으로 수업을 거부하고 거리로 쏟아져 나와 연일 시위를 벌이고 있는데도 이들을 나무라기보다 오히려 격려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인 나라가 프랑스다.

다만 극소수 학생들의 폭력시위에 대해서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을 뿐이다.

교육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프랑스 고교생들의 시위는 15일에도 계속돼 남녀 학생 3만여명이 파리 도심에서 가두시위를 벌이는 등 전국에서 50만명이 시위에 참여했다.

특히 이날 시위에는 프랑스 최대 교원노조인 '전국중등교원노조 (SNES)' 교사들까지 가세했다.

교원노조측은 과밀학급 해소, 교사 충원, 학교시설 개선 등 제자들의 주장에 뜻을 같이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고교생은 미성년자다.

숙성한 사고 (思考) 를 기대하기는 아직 이르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의 단체행동 자체를 걱정할 법한데도 누구 입에서도 그런 얘기는 나오지 않는다.

정당한 주장이라면 누구든 자유롭게 의사표현을 할 수 있도록 부추기는 문화적 배경 탓일 것이라고 생각해보지만 선뜻 납득키는 어렵다.

"마음 같아선 나도 학생들 시위에 동참하고 싶다" 는 클로드 알레그르 교육장관은 "고교생들의 시위는 일종의 시민정신 함양 연습" 이라며 시위의 자발성에 되레 박수를 보내고 있다.

"정당한 시위에 우리 아이가 참가하지 않는다면 부끄럽게 느낄 것" 이라는 프랑스 한 학부모의 말을 들으며 전자우편 때문에 징계를 받은 우리나라 고교생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파리=배명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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