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억축재 서울시 행정주사 이재오씨 누구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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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서울시의 대표적 민원부서로 알려진 재개발과에서만 12년 동안 근무하면서 2백억원 이상되는 재산을 축적한 전 서울시 6급 행정주사 이재오 (李載五.62) 씨.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그를 거론하며 중.하위직 공직자들의 부정부패 척결을 지시했다.

본사 기획취재팀은 그가 어떻게 한자리에 십수년간 머물며 그렇게 많은 재산을 모을 수 있었는지, 중.하위직 공직자 부패의 한 전형으로 삼아 서울지검 관계자와 서울시 동료들, 그의 부동산이 산재한 지방의 주민들을 상대로 밀착취재했다.

뇌물수수 혐의로 지난 2일 검찰에 구속된 전 서울시청 주택국 재개발과 행정주사 이재오씨의 별명은 '李대감' 이다.

직위는 6급에 불과했지만 그가 맡은 재개발 인허가 업무에 대해서는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李씨의 담당구역이었던 광화문 일대 재개발업자들 사이에서는 "李대감을 통하면 안되는 일이 없다" 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 정도였다.

실제 96년 李씨를 통해 도심 재개발사업 허가를 받았던 K건설 崔모부장은 "몇몇 지주의 반대로 공사가 중단됐을 때 李씨가 문제의 땅을 보류지로 처리해줘 일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고 증언했다.

61년 경기도파주 금촌우체국에서 기능직 교환원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한 李씨가 서울시에서도 이권이 많아 노른자위로 통하는 재개발과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84년. 이후 과장은 7명이나 바뀌었지만 李씨는 96년 정년퇴직 때까지 줄곧 한자리를 지켰다.

서울시 인사관계자는 "순환보직에 대한 명문 규정이 없는데다 李씨가 재개발업무에 정통해 전문성을 살려주기 위해 계속 근무한 것으로 안다" 고 해명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시 직원이 한 부서에 근무하는 기간은 통상 3~4년인 점을 감안하면 李씨의 경우는 파격이다.

서울시 고위층에서 李씨의 뒤를 봐주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게 공무원들의 얘기다.

같은 과 동료였던 李모 (44) 주사는 "李씨가 '내 인사는 내가 해' '과장 정도는 내 힘으로 갈아치울 수 있어' 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해왔다" 고 덧붙였다.

실제 李씨는 88년 영등포구청 주택과로 발령이 났지만 변칙적인 파견근무 형식으로 재개발과에 계속 근무하는 괴력을 발휘, 주변을 놀라게 했다.

또 당시 재개발과 직원들은 李씨와 함께 일했던 과장 7명중 한명이 李씨의 영향력으로 1년을 채우지도 못하고 다른 부서로 밀려났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재개발 인허가 업무는 대부분 과장 전결로 돼있지만 주사가 민원인과의 협의.지도과정을 거쳐 모든 서류를 작성, 결재를 올리기 때문에 사실상 권한은 6급 주사에게 주어지져 있다.

이와 비슷하게 각 행정부서의 민원과 관련된 업무체계가 6급 중심으로 이뤄져 주사의 권한은 막강한 실정이다.

같은 과에 근무했던 한 동료직원은 재개발 인허가와 관련된 결재시 李씨가 담당자를 대동하고 "검토가 끝났다.

이렇게 처리하는 게 맞다" 고 하면 상관은 별 지적 없이 결재를 하곤 했다고 말했다.

90년대초 李씨의 상관이었던 모과장은 "과장 재직시 분양가 및 분양시기 결정 등 재개발 핵심업무인 관리처분업무를 행정계가 담당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판단에서 도심개발계로 넘겼는데 그뒤에 다시 李씨가 맡은 것을 보고 놀랐다" 고 말했다.

이 과장은 李씨가 대규모 카오디오 수출회사를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고 그 회사 직원들이 결재서류를 들고 시청까지 찾아온 것을 봤다며 당시 서울시 직원들 사이에서는 "李씨가 시청에서는 주사, 시청문을 나서면 사장" 이라는 비아냥이 나돌았었다고 밝혔다.

李씨는 이같은 위상을 유지하고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현금과 함께 고가의 도자기와 그림 등 귀중품을 상납해왔다.

검찰관계자는 "李씨가 받은 뇌물중 수천만원을 서울시 고위공직자에게 상납했다" 는 내용의 제보를 받았다고 밝히고 있다.

李씨는 검찰 조사과정에서 "재개발과에 근무하는 동안 선물한 도자기 수가 1천점은 족히 될 것" 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또 "상관이 결재를 미루고 있을 경우 자리를 비운 사이 고급 수입 양복지와 현금 5백만원을 큰 서류봉투에 넣어 책상서랍 속에 넣어주기도 했다" 고 진술했다.

(현금 부분은 추후 부인) 그는 관리처분 업무와 서무일을 함께 맡았지만 이권과 관계없는 서무일은 후배에게 맡기고 그 대가로 용돈을 주는 등 관리처분 업무에 치중해왔다.

李씨 대신 서무일을 맡아온 후배는 "일을 대신해주는 대가로 매년 추석과 설날, 여름휴가때 50만원씩 받았고 승용차를 구입할 때는 1백만원을 보태주기도 했다" 고 털어놨다.

상납과 하사를 아주 거리낌없이 한 셈이다.

李씨는 구속이 된 뒤에도 "죄를 뉘우치기 보다는 형을 치르고나서 치부한 돈으로 벌일 사업 구상에 빠져 있다" 는 게 검찰의 전언이다.

李씨를 신문했던 검찰관계자는 "李씨가 '뇌물 금액을 5천만원 이하로 낮춰주면 석방후 2천만~3천만원과 고급 도자기를 선물하겠다' 고 제의했었다" 며 혀를 내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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