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대표라도 피나는 노력해야 생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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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너희 중 몇 명이나 성인 대표가 될 것 같은가. 나와 내기를 해도 좋다.”

한국 청소년 대표팀 구자철(左)이 4일 열린 수원컵 국제청소년축구대회 이집트와의 경기에서 상대 선수와 공중 볼을 다투고 있다. [수원=연합뉴스]

홍명보(40) 20세 이하 청소년 대표팀 감독이 2일 개막한 수원컵 국제청소년대회를 앞두고 선수들에게 한 말이다. 홍 감독은 “대학 대회나 프로 경기를 지켜봐도 지금 대표팀에 들어와 있는 선수들이 최고다. 그러나 앞으로는 달라질 수 있다”고 쓴소리를 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는 홍 감독 자신의 경험이 그대로 녹아 있는 금쪽같은 조언이다.

A매치에 무려 135경기나 출장한 홍명보는 청소년 대표팀은 경험하지 못했다. 16세 때 주니어 대표를 잠깐 했지만 정식 국가대표는 아니었다. 홍 감독은 “작았던 키가 고2 때부터 부쩍 자랐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을 앞두고 대표팀에 처음 뽑혔다”고 말했다. 작은 체구를 극복하기 위해 홍명보는 어려서부터 머리를 쓰는 플레이, 자신보다 체구가 큰 선수를 상대하는 법을 자연스레 체득했다. 키가 커진 후에도 그런 기술이 고스란히 남아 홍명보의 경쟁력이 됐다.

홍명보뿐 아니다. 이영표(알힐랄)도 건국대 4학년 때 대표에 뽑히기 전까지 태극 마크와 인연을 맺지 못했다.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은 대표팀은커녕 고교 졸업 후 불러주는 대학이 없어서 은퇴하고 어떤 일로 밥벌이를 할까 고민하기도 했다. 이영표는 남들보다 앞서기 위해 헛다리짚기를 무던히 연습했고, 특출 난 재주가 없던 박지성은 한 박자 빠른 패스로 동료와 상생을 꾀했다. 살아남기 위해 갈고 닦은 기술이 유럽 리그를 누비는 밑천이 됐다. 홍 감독은 또 “어려서부터 늘 주목받았던 선수들은 조금만 어려움이 닥쳐도 이겨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홍 감독은 “청소년 대표라도 피나는 노력을 하는 선수들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며 “당장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보다 이 아이들을 잘 길러내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2일 수원컵 1차전에서 남아공을 4-0으로 격파한 ‘홍명보의 아이들’은 4일 열린 이집트전에서 1-0으로 승리, 2연승을 달렸다.

경기 막판까지 0-0, 지루한 승부가 펼쳐졌다. 기다리던 골은 후반 40분에야 터졌다. 서정진이 후반 35분 교체 투입된 지 4분 만에 페널티킥을 얻어냈다. 키커로 나선 구자철은 강력한 오른발 슛으로 알리 로프티 이집트 골키퍼의 우측을 뚫어 결승골을 뽑았다.

이해준 기자·수원=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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