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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비행기 재앙을 막으려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대한항공이 태극마크를 달고 오대양 육대주를 다니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전세계를 비행하며 국위를 선양해 왔다.

그러나 지금은 잇따른 사고로 최악의 경영위기를 맞고 있다.

사회에서는 한 기업에 대한 불신과 항공안전 자체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고의 주체는 사람.장비.환경으로 이루어진다.

항공사고 요인을 이 모델에 비추어 보면 사람에는 조종사.정비사.관제사.기타 지상에서 시설과 장비를 관리하는 사람들이 포함되며, 장비는 항공기.항행지원시설.관제시설, 그리고 지상지원장비 등을 들 수 있다.

끝으로 환경은 공항시설.지원시설.운항환경.기상 등으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사람과 관련한 분야에서는 안전에 대한 철학이 있어야 한다.

한 사람의 생명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큰 대가도 치르겠다는 생명을 존중하는 가치관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모든 정책이 수립돼야만 한다.

민간항공은 시간의 긴급함이나, 비밀을 보장하기 위한 은밀함이나, 작은 대가를 희생하면서도 목적을 이루고자하는 성과 위주의 사고방식을 요구하지 않는다.

이를 단적으로 표현하면 민간항공에서는 모든 것을 암기해 보지 않고도 순식간에 임무를 완수하는 사람을 요구하지 않는다.

모름지기 민간항공 종사자에게는 주어진 절차대로 하나하나를 보고 또 보아 실수없이 이뤄 내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

우리에게 교훈적인 일화가 있다.

우리나라 조종사들이 프랑스에 가서 비행교육을 받을 때의 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유능한 조종사들이 그곳에서 교육받는 동안 비행평가에 불합격했다.

물론 프랑스 교관들이 보아도 정말 유능한 조종사들이었는데 불합격된 이유는 단 한가지. 항공기를 조작하는데 있어 우리나라 조종사들이 눈으로 기재의 위치를 확인하지 않고 조작을 행동으로 옮기는 습관 때문이었던 것이다.

불안전한 상태에 놓여 있을 때 불안전한 행동을 하면 이는 곧바로 사고로 이어진다.이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보고 행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새삼느끼게 된다.

정비사의 경우 항공기 제작산업이 기술개발의 혁신을 거듭하면서 모든 것이 자동화되고 최첨단 전자장비로 이뤄져 다른 어느 산업분야보다 전문성이 요구된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항공정비분야에서는 유능한 전문기술인력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그리고 다른 기술분야와 마찬가지로 항공정비분야에서도 절차와 기능보다는 사람에 의한 직무구조로 이루어져 사람이 없는 경우 일이 제대로 되지 않는 풍토도 지적돼야 할 것이다.

대한항공의 경우에도 구조조정을 통해 많은 정비사들이 비운 자리를 체계화된 직무구조로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일 것이다.

관제사와 관련된 문제는 우리나라의 경우 항공기운항에서 이루어지는 관제업무에 대한 관념이 조종사나 관제사 모두에게 서비스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지원보다는 통제개념으로 인식돼 있는 현실이 지적될 수 있다.

이로 인해 안전과 관련한 중요한 비행정보사항이 은연중에 공개되는 것을 기피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둘째, 우리나라 경제가 잘 풀리던 시절에 우리는 장비를 정확히 알고 성능에 맞도록 사용하기보다는 새 것을 선호해 기존 장비에 대한 불만족만을 생각하는 나쁜 관념을 가지게 됐다.

우리는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항공기.지상지원장비.관제장비 등이 다른 나라에 비해 질이 떨어져 사고가 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셋째, 환경분야로 보면 예를 들어 활주로 길이가 짧은 것을 탓할 게 아니라 그곳에 맞는 항공기와 운용방법을 택하는 방식을 취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우리의 모습은 그렇지 못하다.

우리는 아직도 바꿀 수도 없는 시설을 장비에 맞도록 요구하고 있으니 생각의 발상부터 잘못됐다고 본다.

그렇다면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안전관리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관리의 기본개념은 계획 - 실행 - 평가다.

계획과 평가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실행과정에서 얻어지는 자료의 관리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자료화해 축적하고 실적을 관리해 이를 활용하는 일을 소홀히 하고 있다.

모든 사고는 보고되고, 기록되고, 분석돼 공개될 때 이와 유사한 사고의 재발을 방지할 수 있다.

또한 모든 사고에는 근원적인 원인이 있는데도 이를 분석하지 않고 임시방편적으로 덮고 쉽게 넘어간다면 이로 인해 더 큰 재앙이 우리에게 닥쳐온다는 엄연한 진리를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김칠영(한국항공대교수.항공운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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