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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세 '한글지킴이' 최종규씨 한글학회 공로상 수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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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패스트푸드.인스턴트식품보다는 '빨리 먹을거리' 나 '바로 먹을거리' 로 쓰는 게 정겹지 않나요. 쓰면 쓸수록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이 우리말입니다. " 5년 동안 홀로 묵묵히 한글사랑운동을 펼쳐온 대학생이 9일 5백52돌 한글날을 맞아 한글학회 (회장 許雄) 로부터 공로표창을 받는다.

주인공은 한국외국어대 네덜란드어과 3학년에 재학중인 최종규 (崔鍾圭.23) 씨. 그동안 한글운동 공로로 이 상을 받은 2백30명 중 대다수가 한글학자.관련단체나 지명인사였던 점에 비추어 볼 때 崔씨의 수상은 파격적이다.

그는 역대 수상자 중 최연소다.

崔씨가 순우리말에 애정을 갖게 된 것은 역설적이게도 외국어를 전공한 것이 계기였다.

"외국작품을 번역하면서 적합한 우리말 표현을 찾기가 쉽지 않았어요. 고민하다 보니 자연스레 관심이 생기더군요. " 대학 1학년 때인 94년 여름 네덜란드 소설 번역 작업을 하며 우리말 운동에 관심을 가진 崔씨는 우선 청계천 헌책방 등을 뒤져가며 순우리말 독학에 나섰다.

40년대판부터 최신판까지 40여종의 국어사전을 탐독하며 한자어.외래어 등을 대체할 순우리말을 찾기 시작했다.

차츰 우리말의 맛을 느끼게 된 그는 그해 12월 PC통신에 '우리말 한누리' 방을 개설, 자신의 작업을 외부로 알렸다.

하루에 한마디씩 순우리말을 소개하거나 개선해야 할 언어습관 등을 게재했다.

펌프는 '무자위' 로 써야 하며 '모르쇠' 는 모르는 척 넘어가는 시늉이라는 등의 내용이 상세한 해설과 함께 실렸다.

황적색.황갈색은 꼭두서니빛.치자빛 등으로 쓰자고 주장했다.

이렇게 崔씨를 통해 일반에 소개된 '낯선' 우리말은 1백여개. 95년말 군에 입대한 후에도 그의 한글사랑운동은 이어져 '배수로작업' 은 '물골작업' , '총기수입' 은 '총기손질' 로 쓸 것 등을 제안해 부대장이 용어 변경을 지시하기도 했다.

崔씨는 또 95년 2월부터는 통신에 띄운 글들을 모아 '우리말을 살려 쓰는 우리' 라는 10~50쪽짜리 소책자도 발간해오고 있다.

이번 10월 31호까지 나온 책자는 매회 1백여부가 찍혀 각 대학 국문과.한글연구단체.시민단체 등으로 보내진다.

매달 15만원씩 드는 발간비용은 신문배달이나 세차장 아르바이트 등을 해 마련하고 있다는 崔씨는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든 뜻을 우리 말과 글을 꾸준히 다듬는 후손들의 노력으로 완성해야 할 것" 이라고 말했다.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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