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가는 국회]중.전문성 없는 전문위원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지난달 26일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전문위원실에선 소동이 벌어졌다.

이틀 뒤인 28일부터 상임위에서 심의할 청소년보호법 개정안의 전문위원 검토보고서 준비가 안됐기 때문이다.

해당기관 공무원들이 긴급 '소환' 됐고 검토보고서는 이들의 조언을 받아 한밤중에야 가까스로 작성됐다.

한데 정작 법안을 심의하려고 보니 문광위가 아니라 새로 발족된 정무위에서 다뤄야할 사안으로 밝혀지는 해프닝이 잇따랐다.

문광위 소속 국민회의 보좌관 Q씨는 "법안이 지난해 11월 의원 78명에 의해 발의됐는데도 전문위원실에서 10개월 동안이나 제쳐두고 방치하는 바람에 이런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졌다" 며 "대표적인 민생법안조차 이 지경으로 처리되는 게 국회의 현실" 이라고 말했다.

국회의 20개 상임위마다엔 수석전문위원과 전문위원, 입법심의관과 조사관들이 배치돼 있다.

1급인 수석전문위원이 20명, 2급인 전문위원이 13명, 4급 또는 5급인 심의관.조사관이 83명이다.

이들이 하는 일은 막중하다.

법안이 제출되면 이를 정밀 검토해 결과를 의원들에게 고지하는 역할이다.

행정부 견제기능을 제대로 하라고 94년엔 차관보급인 수석위원 제도까지 만들었다.

행정부 공무원들에게 이들은 껄끄러울 수밖에 없다.

국회를 담당하는 공무원 Z씨는 "전문위원들이 법안에 대해 부정적 의견의 검토보고서를 내면 통과가 쉽지 않기 때문에 이들을 '모실' 수밖에 없는 입장" 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처럼 국민생활과 직결된 법안들을 검토하는 이들의 전문성 여부다.

현재 학력.경력으로 따질 일은 아니지만 13명인 전문위원 중에는 속기사 출신이 2명이다.

입법조사관.심의관 중에는 고졸도 3명이나 되는 등 각양각색이다.

능력.전문성만 있으면 상관없겠지만 과연 그러느냐는 점이다.

이와 관련,가장 의아스러운 대목이 국회 전문위원.심의관 등이 순환보직 대상이라는 것이다.

환경문제를 다루다 갑자기 과학기술을 토론하거나 보건전문가로 변신해야 할 판이다.

그나마 76년부터 시작된 입법고시를 통해 들어온 직원들도 일반 행정분야 시험만을 치른 비전문가들인데다 국회 행정업무와 상임위 입법업무를 닥치는 대로 맡고 있어 한계가 있다.

한나라당 보좌관 T씨는 "전문위원 검토보고서는 정부 의견의 복사판인 경우가 태반" 이라고 말했다.

사무처 직원 V씨도 "과거에는 행정부에서 검토보고서를 써준 것도 사실" 이라고 했다.

이런 판인데도 외부 전문가들을 채용하는 길도 막혀 있다.

현행 국회규칙은 '전문위원은 국회 일반직 2급 공무원으로 임용한다' 고 못박고 있다.

'밥그릇' 을 지키려고 외부 수혈 (輸血) 을 교묘히 막고 있다는 비난은 그래서 나온다.

국회에는 의원들이 법을 만들고 예산을 심의하는걸 도와주는 법제예산실 (38명) 이 있다.

그러나 이곳엔 변호사나 회계사 출신은 한명도 없다.

비난 여론이 끊이지 않자 95년엔 변호사 출신 3명을 계약직 파트타임으로 채용했었다.

하지만 이들은 1년만에 전부 나가버렸다.

비리의혹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96년엔 감사원 감사에서 전문위원실의 직원이 산하단체에 술값을 요구한 사실이 적발됐다.

한나라당 초선의원 보좌관 W씨는 "97년 국감 때 국회 심의관이 1백만원이 넘는 술값 영수증을 산하단체로 보낸 사실을 알게 됐으나 산하기관측에서 자신들이 다친다며 비밀로 해줄 것을 요구해 덮어버렸다" 고 말했다.

국회 전문위원 E씨의 자기고백은 새겨볼 만하다.

그는 "국회가 역할을 제대로 했으면 어떻게 인천국제공항이나 경부고속철도.농어촌구조개선 사업 등의 엄청난 부실이 가능했겠느냐" 며 "전문위원 제도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가 절실한 게 사실" 이라고 말했다.

김종혁.윤창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