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 차 딜러 “하루 29대 판매 대박” … 소비 살아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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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의 한 중개인이 모니터를 통해 시황을 지켜보고 있다. 2분기 미국 경제성장률이 예상보다 좋았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날 증시는 상승세를 이어갔다. 이로써 7월 다우지수는 2002년 이후 가장 좋은 월 단위 성적을 거뒀다. [뉴욕 AFP=연합뉴스]

#1 미국 텍사스주 알링턴의 GM 자동차 딜러 윌 카터는 지난 주말 녹초가 됐다. 지난달 24일부터 일주일 동안 매일 새벽까지 야근을 해서다. 금요일인 31일엔 새벽 2시까지 화장실 갈 틈도 없이 바빴다. 그 덕에 하루 만에 새 차 29대를 팔았다. 지난달 초만 해도 하루 다섯 대 팔면 횡재라고 했다. 그는 “몸은 힘들었지만 지난주 실적이 올 들어 최고를 기록할 것 같다”고 말했다.

#2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웨스트컬럼비아에 사는 제임스 던은 지난달 31일 오랜 숙원을 풀었다. 20년 된 픽업을 2009년형 빨간색 크라이슬러 캘리버로 바꿨다. 이날 직장을 그만 둔 그는 몇 번을 망설였다. 그러나 정부가 지난달 24일 시작한 중고차 보상판매가 일찍 마감될 거란 딜러 말에 차부터 바꾸기로 했다. 던은 “비록 직장은 잃었지만 최근 주가가 뛰어 펀드에 투자한 연금이 불었다”며 “경기도 살아나는 것 같아 큰 걱정은 안 한다”고 말했다.

미국 소비심리에 지난주 모처럼 온기가 돌았다. 미국 정부가 24일 시작한 중고차 보상판매 프로그램 덕에 새 차 판매가 급증해서다. 이는 연비가 떨어지는 오래된 중고차를 기름을 덜 먹는 새 차로 바꾸는 사람에게 정부가 최고 4500달러까지 보조금을 주는 프로그램으로 11월 1일까지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제도다. 그런데 지난달 24일 시작하자마자 일주일 만에 당초 책정해 놓은 10억 달러의 예산이 동났다. 소비자의 빗발치는 요구에 정부와 하원은 부랴부랴 지난달 31일 20억 달러를 증액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정부도 새 차 판매 열기에 한껏 고무됐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이번 프로그램은 우리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는 성공작”이라며 “이 제도를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비록 정부 보조금이란 ‘당근’이 있었다고는 하나 새 차 판매가 급증한 데는 경제지표 호전과 주가 상승도 한몫했다고 월스트리 저널(WSJ)·뉴욕 타임스(NYT)가 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얼어붙은 소비심리를 녹이는 효과가 있었다는 것이다.

우선 지난달 31일 미국 상무부가 발표한 2분기 경제성장률이 -1%(전 분기 대비, 연율)로 전문가 예상치 -1.5%보다 좋게 나왔다. 1분기 -6.4%에 비하면 몰라보게 나아진 수치다.

경제예측기관들은 성장률 예상치를 잇따라 올리고 있다. JP모건은 3분기 경제성장률이 최근 2년 동안 최고치인 3%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기존 예측치보다 0.5%포인트 올린 것이다. 도이체방크도 올 하반기 평균 성장률 전망치를 0.5%에서 2.25%로 크게 높였다. 부동산시장과 주식시장에서도 잇따라 파란 불이 들어왔다. 뉴욕증시의 다우지수는 7월 한 달에만 8.6% 올라 2002년 10월 이후 최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아직은 샴페인을 터뜨릴 때가 아니라는 경계론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세계 경제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유럽·일본 경기가 갈수록 악화하고 있는 게 변수다. 유럽연합(EU)의 실업률은 6월에 9.4%로 99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 여파로 7월 소비자물가는 0.6% 떨어져 디플레이션 우려도 나온다.

세계 증시가 7일 발표되는 미국의 7월 고용지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마켓워치와 로이터 통신은 전문가 조사를 토대로 7월 실업률이 9.6%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6월(9.4%)보다 약간 높은 수준이다. 실제 지표가 이보다 좋게 나오면 경기 회복론에 힘이 실릴 공산이 크다. 골드먼삭스 이코노미스트 에드워드 매컬비는 “소비자는 고용 사정이 호전될 때까지 지갑을 열려고 하지 않고, 반대로 기업은 소비 회복이 확인될 때까지 고용을 늘리지 않으려 한다”며 “이게 급속한 경기회복을 가로막고 있다”고 설명했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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