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가는 국회]상.의원들 편법보좌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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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국회는 '개혁 무풍지대' 인가.

비단 국회의원뿐 아니라 보좌진.사무처도 개혁과는 담을 쌓고 있는 특수지대다.

IMF시대를 맞아 정부.민간을 가릴 것 없이 모두 구조조정의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 마당이지만 입법부라는 '철갑' 을 쓴 국회는 개혁을 도외시한 채 갖가지 탈법과 편법, 비효율과 무능의 온상이 되고 있다.

국회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열거하기 조차 힘든 각종 변칙사례들은 중앙일보의 심층취재를 통해 무수히 확인됐다.

일부 의원들은 의정활동 지원을 위해 두도록 한 보좌관.비서관에 자신의 일가친척, 심지어 부인을 등록시켜 국고를 축내고 있다.

비서관을 자신의 부인 운전기사나 개인 사무실 직원 등으로 쓰는 경우도 있다.

역시 의원들의 입법과 대정부 감시활동을 돕기 위한 국회사무처도 불필요한 자체 기구들만 계속 늘려, 자리와 '철 밥그릇' 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게 아니냐는 비난을 받는다.

또 국회 상임위 전문위원 (1급.2급) , 입법심의관 자리를 전문성과는 무관한 사람들이 차지하는 경우도 허다해 효율적인 입법과 행정부 감시라는 구호를 무색케 한다.

본연의 임무와 기능을 상실한 채 '공룡' 이 돼버린 국회의 실태를 3회에 걸쳐 집중 보도한다.

경제기획원 관료출신인 자민련 이상만 (李相晩.충남아산) 의원이 국회사무처에 등록한 4급 보좌관은 張모 (58) 씨. 실은 李의원의 부인이다.

국회사무처는 지난해 1월 1일부터 지금까지 연봉 4천여만원에 이르는 4급 보좌관 월급을 張씨 통장에 꼬박꼬박 입금시키고 있다.

그러나 외부에 공개되는 국회수첩엔 張씨 대신 5급 비서관 이병수씨가 보좌관으로 등재돼 있다.

李의원은 또 8월말부터는 아들 (29) 도 6급 비서관으로 등록시켜 국회로부터 월급을 받도록 하고 있다.

무소속 홍문종 (洪文鐘.경기의정부) 의원은 지난 5월 金모씨를 4급 보좌관으로 등록시켰다.

金씨는 개인적으로 洪의원의 선거운동을 도왔던 사람으로 알려지지만 국회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게다가 비서진 2명도 지구당 사무실에 근무하고 있어 국회가 월급을 주는 洪의원의 비서진 5명중 국회로 출근하는 사람은 2명뿐이다.

국민회의 徐한샘 (인천연수) 의원은 지구당 간부 3명이 국회보좌진으로 등록돼 있다.

국회가 徐의원 지구당 간부들의 월급을 거의 다 대는 셈이다.

이중 鄭모씨는 최근 지구당 당직을 사임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鄭씨에게도 계속 월급이 지급되고 있다.

한나라당 김찬진 (金贊鎭.전국구) 의원의 경우 자신의 변호사 사무실 여비서가 국회로부터 월급을 받는다.

金의원이 이 여직원을 국회 6급직 비서로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이 교묘한 편법 등으로 국고를 전용하는 사례가 널려 있다.

특히 IMF사태 속에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정치권의 음성적인 자금모집이 어려워지자 이같은 현상은 더욱 기승을 부린다.

현재 국회의원 보좌진은 의원 1인당 5명씩 모두 1천4백95명. 국회 별정직 4.5.6.7급과 9급이다.

국회의원이 누구를 보좌관으로 쓰건, 비서관을 어떻게 활용하건 전적으로 자신의 일이다.

하지만 최소한 입법.국정감사 지원 등 의정활동의 일환이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보좌진 가운데는 박사.석사도 수두룩하므로 이들이 제 역할만 한다면 의정활동의 질은 훨씬 높아질 게 분명하다.

그러나 상당수 의원들이 본래의 취지와는 달리 보좌진을 개인 고용인처럼 사용 (私用) 하고 있다.

탈법과 편법을 감추려는 듯 대외적으로는 엉뚱한 사람들을 보좌진으로 내세우고 국회사무처에는 제3의 인물을 등록시켜 돈을 받아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국회 행정자치부 상임위원장인 자민련 이원범 (李元範.대전서갑) 의원은 운전기사 朴모 (25) 씨를 보좌관으로 등록, 국회는 朴씨에게 4급 보좌관 월급을 주고 있다.

국회수첩에 보좌관으로 등록돼 일하고 있는 嚴모씨는 사무처에는 아예 이름조차 없다.

의원회관 사무실을 아예 '가족모임' 으로 만드는 경우도 많다.

미국과 독일에선 비서진의 친인척 고용 자체가 불법이지만 우리 의원들은 이를 아랑곳 하지 않는다.

게다가 국회 보좌진 1~2명을 지구당 당직자로 전용하는 편법은 여야를 가릴것 없이 너무 많아 사례를 들기조차 어려울 지경이다.

더 큰 문제는 이같은 탈법.편법운용이 고스란히 입법활동의 부실로 전이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나라 중진의원 보좌관 A씨는 "의원이 5명의 보좌진중 3명을 개인적으로 쓰고 있다.

국회 일을 하는 사람은 2명에 불과하고 그중 1명은 여비서인데 어떻게 효과적인 의정활동이 가능하겠느냐" 고 반문했다.

숙명여대 박재창 (朴載昌.정치학) 교수는 "보좌진을 허위로 등록시켜 국고를 빼먹는 행위는 명백한 범죄행위" 라며 "보좌진 명단 공개를 의무화하는 등 제도적인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고 지적했다.

김종혁.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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