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우리 자개의 야문 손맛, 세계에 보여줄래요”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25호 10면

“어떻게 이 좋은 우리 것을 다른 나라에서 빌려와야 한단 말인가.”
2006년 가을 국립박물관 ‘천년을 이어온 빛-나전칠기’전을 찾은 크로스포인트 손혜원(54) 대표에게 고려 및 조선 초 나전칠기 작품 대부분이 일본인 소유라는 사실은 충격이었다. “100년쯤 지나면 아예 국내에서는 전시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자개로 만든 장롱·문갑·경대가 필수 혼수품이던 시절은 다 지나갔지 않은가. 독특한 우리만의 나전칠기 기술은 날로 쇠락하고 있었다. 훌륭한 전통이 이런 대접을 받아서는 안 되는 거였다. 누군가 관심을 보여야 했다. 나전은 그렇게 그의 삶을 헤집고 들어왔다.

‘한국 나전 근현대 명품전’ 여는 크로스포인트 손혜원 대표

‘처음처럼’ ‘종가집김치’ ‘엑스캔버스’ ‘힐스테이트’ 등 브랜드 네이밍 작업으로 이미 명성을 구가해 온 그에게 통영시의 로고 작업이 맡겨진 것도 우연은 아니었다. 전통 자개, 소반 등으로 유명한 통영 12공방의 장인들, 특히 무형문화재 나전장 송방웅 선생을 만나면서 자개의 매력에 푹 빠져들었다. 처음에는 장인들의 작품을 하나 둘 구입하다가 일제강점기, 조선시대 작품으로 점점 거슬러 올라갔다. 그렇게 3년 만에 200여 점을 모았다.

“처음엔 가짜도 많이 샀죠. 이젠 좀 보는 눈이 생겼어요. 알면 알수록 나전은 국가 경쟁력이 있는 민족공예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하고 있지만 기술이나 재료나 디자인이나 우리나라가 최고죠.”

그는 ‘옻칠을 제대로 한 야문 나전칠기가 얼마나 좋은지’에 대해 한참 설명했다. “화학칠을 한 가구가 워낙 많은데 진짜를 보셔야 돼요. 화학칠한 것들은 우선 냄새가 나거든요. 옻칠한 것은 냄새가 나지 않아요. 또 옻칠에서 나오는 원적외선이 황토의 20배가 넘는다고 하지요. 옛 어른들이 항상 곁에 두고 있었던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거죠.”

제대로 된 나전칠기인지 가리기 위해서는 베를 발랐느냐 하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고 그는 말했다. 나무가 늘어나고 줄어드는 것을 보완해 준다고 해서 좋은 작품에는 꼭 베를 바르고 옻칠을 했다는 설명이다.

“자개의 패턴도 재미있죠. 고려시대에는 전체적으로 꽉 채우던 것이 조선에 들어오면서 여백의 미를 강조하는 동양화를 연상시킵니다. 십장생이나 매란국죽 등 스토리도 있고. 그림을 따로 그려 주는 사람이 있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숙련된 화가의 필치를 보이죠.”

그가 이렇게 모은 작품으로 8월 1일부터 7일까지 서울 신라호텔 에메랄드홀에서 ‘한국나전 근현대 명품전’을 연다. 한국 나전의 진수를 볼 수 있는 이번 전시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손 대표의 소장품을 시대별로 구분한 것 하나, 무형문화재 나전장인들의 명품전이 하나, 그리고 조선시대 목기와 나전을 현대식으로 응용한 기획작품이 나머지다. 이번 전시에서는 한국 나전의 전설로 남아 있는 고 김봉룡·김태희·송주안 선생을 비롯해 송방웅, 원주에 거주하는 중요무형문화재 이형만, 서울시 무형문화재 손대현·정명채, 칠화작가 최종관, 나전칠예작가 김선갑 선생 등의 작품을 한데 모았다.

기획전에서는 손 대표의 디자이너적 아이디어가 번득인다. 버려지는 자개 장롱이나 소반 등에서 쓸 만한 자개를 잘라 낸 뒤 이를 미니 탁자, 쟁반 등으로 재가공했다.
“조상님들은 목기를 주로 썼으니 여기에 자개를 붙이셨죠. 하지만 지금은 새로운 소재도 많고, 그런 만큼 자개의 새로운 쓸모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어요. 지금 알루미늄 탁자에 자개 작업을 하고 있는데 아주 예뻐요. 꼭 와서 보셔야 해요.”

그에게 나전칠기는 당연하게도 전통의 세계화를 위한 수단이다. “현대적 스타일의 나전칠기를 들고 밀라노 가구박람회에 나가려고요. 가서 우리 전통이 이렇게 아름답다는 것을 세계 사람들에게 꼭 보여 줄 겁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