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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전 연 '포커왕' 바둑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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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거액의 상금이 걸린 바둑을 둘 때나 포커 게임을 할 때보다 가슴이 더 떨립니다. 한 점도 안 팔리면 어쩌나 하고요. 허허."

프로 바둑기사 차민수(53)씨가 서울 한국프레스센터 1층 서울갤러리에서 개인 미술전을 열고 있다. 2일 개막해 7일까지 계속되는 이 전시회의 판매 수익금은 전액 불우이웃 돕기에 사용될 예정이다. 미국 시민권자인 차씨는 프로 4단의 바둑 고수에 세계 정상급 도박사다. 쿵후가 공인 7단이며, 바이올린과 피아노 연주 실력도 수준급인 팔방미인이다. 그런 그가 이번에 그림에까지 손을 뻗친 것이다.

"평소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습니다. 1999년 예술인들의 모임인 청솔회에서 화가 조동화 선생님을 만나 본격적으로 그림을 배우게 됐지요. 아직 부족한 것이 많은데 주위에서 격려해줘 전시회를 열게 됐습니다."

이번에 전시하는 작품은 9.11 테러를 소재로 한 '미국의 비극'을 비롯해 '승부의 세계''자연 사랑'등 추상화 60여점이다.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틈틈이 그린 것들이라고 한다.

"데생 등 기본기가 달려 서울 인사동의 화실에서 공부하느라 밤을 지샌 적이 많았습니다.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지 그림 하나하나에 정이 갑니다. 추상화를 택한 것은 바둑과 연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바둑을 그림으로 표현하자면 대표적인 추상화 아니겠습니까."

동국대 경제학과 3학년을 마치고 76년 도미한 차씨는 84년 프로 도박사의 길로 들어섰고, 87년 세계 포커대회 스타 토너먼트 챔피언이 되면서 세계 정상급 도박사로 인정받았다. 한국에 있을 때 이미 프로 초단이 됐을 만큼 잘 뒀던 바둑도 계속 연마해 89년, 90년 연속 후지쓰배 세계바둑대회에 미주 대표로 출전했다. 그의 드라마틱한 인생 역정은 SBS 인기 드라마 '올인'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차씨는 "연간 100만달러 이상 벌던 한창 때만은 못해도 요즘도 (도박의) 승률이 87%에 이른다"며 "기회가 닿으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도 미술 전시회를 한번 열고 싶다"고 말했다.

글=하지윤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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