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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25호 34면

일단의 정치인들이 여의도에서 활극을 벌이며 세계를 놀라게 한 요즈음, 또 다른 한국인들은 인천에서 세상을 향한 문을 열고 있다. 구한말 외세 강압으로 마지못해 열었던 불행했던 개방의 역사를 딛고 인천은 지금 세계를 향해 적극적인 구애의 몸짓을 보내고 있다. 그중 신도시 송도는 동북아 비즈니스의 관문 역할을 자임하며 경제자유구역을 선포하고 해외 자본과 기술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려 한다. 이를 대내외에 공표하는 행사가 7일 송도에서 열릴 2009 인천세계도시축전이다. 그 한마당 잔칫상에 어떤 메뉴가 올라 있는지 미리 좀 가 보았다.

도시개발, 환경 에너지, 첨단 기술, 문화 예술, 그리고 관광 레저의 다섯 가지 테마로 각종 전시와 이벤트를 준비한 인천세계도시축전은 80일간 700만 명의 국내외 관객과 만날 채비를 하고 있다. 도시의 문제가 곧 삶의 문제가 되어 버린 오늘날, 인류의 당면과제인 환경 문제와 수자원 등에 관한 전시와 국제 포럼이 열린다. 다른 한편에선 미래 도시의 비전을 보여주는 기술 유토피아적인 전시들도 눈에 띈다. 유비쿼터스니 로봇이니 하는 엑스포 단골 메뉴가 등장한다. 하지만 눈을 휘둥그래하게 만드는 기술적인 현란함 대신 작금의 신기술은 일상 생활과 상당히 밀착되어 있다. 기술의 인간화라 불러도 좋을 듯싶다.

기술과 자본력에만 의지해서 멋진 축전을 만들려는 발상은 마치 화려한 음식과 큰 집만 있으면 훌륭한 파티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기술과 자본이 문화와 결합되지 않으면 공허하고 지루한 이벤트가 되고 만다. 매력적인 문화가 없는 곳에 기술도 자본도 오래 머물지 않는다. 인천세계도시축전은 문화예술에 대한 안배를 하고 있다. 아프리카 민속춤에서 트로이 목마, 보르도 와인까지 세계의 다양한 풍물을 체험하는 문화의 거리가 있고 과학기술과 예술을 접목한 미래지향적 예술을 보여주는 디지털 아트 페스티벌도 열린다. 이를 통해 세계의 다양한 문화와의 소통이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문화예술 전시 행사가 백화점 식의 단순 나열에 그칠 위험도 존재한다. 한 판의 장터나 놀이판이 지나고 나서 별로 손에 남는 것이 없을 수 있다. 세계를 우리 안으로 끌어들이고자 할 때 우리는 과연 무엇을 보여줄 것이며 우리 안에 있는 무엇으로 세상의 다양한 문화를 녹여 낼 것이냐가 소통의 관건이다. 소위 한류(韓流)의 소재나 몇몇 전통적 모티브만 가지고는 역부족이다. 한국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걸 넘어서서 우리의 정서와 문화를 보편적인 가치로 승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문화적 역량이다. 우리 안에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문화적 역량이 축적되어 있지 않다면 외국의 좋은 것들을 백날 들여와도 문화 생산국이 되지 못하고 외국 문물의 소비시장 노릇만 하게 된다. 안타깝게도 이는 우리 문화의 현 주소다.

한 국가의 문화적 역량은 사회와 개인의 다양한 욕구들을 잘 조화시켜 스스로 행복한 삶을 가꾸어 내는 힘이다. 이런 정신적인 힘이 사실 우리에게는 존재한다. 사람의 마음은 하늘의 마음이고 이는 ‘한마음’이라는 사상이다. 한없이 크고 넓어서 삼라만상 세상의 다양성을 포용할 수 있는 ‘큰 마음’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요사이 한국인들은 이를 ‘모두가 다 똑같이 사고하고 행동하는 마음’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모두가 다 똑같을 때 건강하고 아름다운 세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생태계의 법칙이다.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서로의 존재를 고마워하고 아끼는 마음이 바로 우리가 길러야 할 문화적 역량이 아닐까. 우리 조상은 ‘큰 마음’을 앙망하며 평화 공존과 생태계 존중을 삶으로 실천했다. 이제 우리 안에 있는 보물을 다시 되짚어 보자. 극렬한 사회 갈등과 한풀이 정치로 대한민국이란 국가의 브랜딩을 할 순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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