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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공은 인생이고, 축구는 예술이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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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호 16면

브라질은 2002년 한ㆍ일 월드컵에서 통산 다섯번째 우승을 기록했다. 역대 최다우승이다. 결승에서 독일을 2-0으로 물리친 브라질의 주장 카푸가 우승컵을 들어올리자 동료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

태양 대신 축구공이 떠오르는 나라가 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궁핍한 일상 속에서도 발끝에 닿는 축구공의 느낌만으로 행복하다.

해가 지지 않는 축구의 제국 브라질

유럽에서 건너온 둔탁하고 거친 축구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려 둥근 공 하나로 세계를 지배한 축구제국. 이름만으로도 가슴 벅찬 축구 영웅들이 즐비한 이 나라 곳곳에는 새로운 영웅을 꿈꾸며 맨발로 볼을 차는 아이들로 넘쳐난다.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월드컵 본선에 오른 유일한 나라이자 최다 우승(5회)을 거둔 브라질이다.

브라질은 2010년 월드컵이 열리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지난 6월 열린 2009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우승했다. 각 대륙의 챔피언들이 자웅을 겨룬 이 대회에서도 브라질은 빛났다. 결승전에서 미국에 두 골을 먼저 내줬으나 세 골을 빼앗아 역전 우승했다. 통산 세 번째 컨페더레이션스컵 우승이었다.

브라질 축구에 열광하는 까닭은 단지 우승을 휩쓸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거친 압박과 힘이 지배하는 현대 축구의 흐름 속에서도 축구 본연의 아름다움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브라질 축구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같은 일류 무대에서 더욱 빛난다. 브라질 출신 선수들이 없다면, 이들 리그는 빛이 바랠 것이다.
 
삼바 리듬에 유럽의 힘 더해
축구 본토인 유럽 사람들은 1958년 월드컵에서 개최국 스웨덴을 상대한 펠레의 묘기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슛과 패스는 땅에서 시작된다는 고정관념을 깬 한 장면 때문이다.

펠레는 공을 뒤로 살짝 찍어올려 스웨덴 수비수 키를 넘겼다. 수비수가 어리둥절하는 사이 어느샌가 볼의 낙하지점에 다다른 펠레는 볼이 땅에 떨어지기 전에 오른발 발리슛으로 골네트를 흔들었다. 드리블과 두 번의 볼터치까지 펠레는 볼을 땅에 떨어뜨리지 않는 마술 같은 골을 만들었다. 포르투갈어로 ‘챙이 달린 모자’라는 뜻의 샤페우(Chapeu)라는 기술이었다. 볼의 궤적이 모자 모양이라고 해서 붙은 용어다.

펠레가 보여준 이 기술처럼 다른 나라 선수들이 감히 흉내낼 수 없는 예측불허의 창조성은 ‘브라질다운 축구’의 원천기술이었다.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우승하며 가장 먼저 세 번째 월드컵을 차지하며 줄리메컵을 영구 소유한 주인공도 브라질이었다.

이후 유럽의 반격은 거셌다. 이탈리아는 빗장수비(카테나치오)를 고안해 브라질의 공격을 막았고, 네덜란드는 ‘전원 공격, 전원 수비’를 내세운 토털사커로 드리블할 공간조차 내주지 않았다. 이후 브라질은 24년간 월드컵에서 우승하지 못한다. 유럽의 조직과 힘을 접목하며 실리를 찾기 시작한 브라질은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호마리우와 베베투를 앞세워 다시 최강의 자리에 올라섰다. 2002 한·일 월드컵마저 거머쥐며 통산 5회 우승의 위업을 이룬 브라질은 펠레 시대 이후 또 한 번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브라질 축구는 ‘황금의 4중주’ 역사
브라질 축구는 한 명의 뛰어난 리더와 개성 강한 3명이 이뤄내는 앙상블로 완성된다. ‘황금의 4중주’라는 말은 이래서 만들어졌다. 이 말은 1982년 스페인 월드컵을 앞두고 브라질 미드필드를 지킨 지쿠, 소크라테스, 세레조, 팔카우 등 4명의 환상적인 호흡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지쿠와 팔카우는 소크라테스의 지능적인 패스와 세레조의 헌신적인 수비를 바탕으로 화려한 골을 만들어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이들의 패스를 지켜보노라면 탄성이 절로 나왔다. 정작 이들은 스페인 월드컵에서 이탈리아의 빗장수비에 막혀 8강 진출에 실패했다. 그럼에도 ‘황금의 4중주’는 이후 브라질 축구를 설명하는 대명사가 됐다. 이 말은 때마다 등장하는 4명의 특급 스타들에 의해 세계를 지배해 온 브라질 축구의 특징을 제대로 담고 있기 때문이다.

펠레를 위시해 자갈로·바바·가린샤로 이어지는 원조 ‘황금의 4중주’는 1958년 스웨덴 월드컵과 1962년 칠레 월드컵을 연거푸 석권했다. 1970년 멕시코 월드컵 당시 브라질 대표팀은 역사상 최고의 팀으로 평가받는다. 완숙한 기량에 올라선 펠레와 함께 ‘왼발의 달인’ 히벨리누와 매경기 골을 뽑아낸 자일지뉴, 토스탕이 이루는 개성 강한 4명의 조화로운 몸놀림을 막아낼 팀은 없었다.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는 호마리우와 베베투가 최전방에서 춤을 추듯 골을 넣었다. 레오나르두가 침착하게 이들에게 패스를 배급했고 개성이 강해 자칫 흐트러질 수 있는 분위기는 엄한 주장 둥가가 조율했다. 24년 만의 월드컵 우승을 만든 4명이다. 2002 한·일 월드컵 때는 ‘3R’ 호나우두, 히바우두, 호나우지뉴에다 주장 카푸가 호흡을 맞췄다.

둥가가 지휘봉을 잡은 현재 브라질 대표팀의 리더는 카카(레알 마드리드)다. 여기에다 호비뉴(맨체스터시티)와 호나우지뉴 등이 힘을 보태고 있다. 이번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5골로 득점왕을 차지한 파비아누(세비야)는 호나우두와 아드리아누를 대신할 새로운 주포로 떠오르고 있다.
 
1만명 이상 수용 축구장만 500개
브라질 축구만의 아름다움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우선 수많은 유망주 속에서 옥석만을 가려낼 수 있는 풍부한 인적자원을 꼽을 수 있다. 브라질에서는 아들의 돌잔치 때마다 축구공을 선물한다. 800개의 프로구단과 1만 명 이상을 수용하는 축구장이 500개가 넘는 체계적인 시스템 속에서 수많은 축구선수가 배출된다. 월드컵 통산 최다골(15골)을 보유한 호나우두도 어린 시절 자신이 선망했던 플라멩구에서 퇴짜를 맞은 적이 있었을 만큼 브라질의 유망주들은 차고 넘친다.

‘살롱’으로 불리는 공으로 축구를 시작하는 브라질 어린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정교한 플레이를 익힐 수 있다. 일반 축구공보다 작은 ‘살롱’은 어린 시절부터 개인 기술을 익히는 데 안성맞춤이다. 작은 공을 다루다 보면 어느 순간 세밀함이 몸에 밴다. 브라질 선수들이 좁은 공간에서도 능숙하게 패스, 드리블, 트래핑하며 맹수처럼 달려드는 상대 수비수들을 앞에 두고도 볼을 아기 다루듯 부드럽게 다룰 줄 아는 이유다. 호나우지뉴(AC 밀란)는 “처음엔 양말로 만든 공, 나중엔 테니스공, 조금씩 큰 공을 가지고 놀다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내 축구공을 얻게 되었다”고 말한다.

울퉁불퉁한 붉은 흙바닥의 공터에서, 비좁은 골목길에서, 어둠이 내린 해변에서 익힌 기술은 잔디 위에서 창조성으로 진화한다. 유전적인 이유를 꼽는 이들도 있다. 백인의 힘과 흑인의 유연함, 그리고 인디오들의 야수성은 축구의 본질인 원시성을 가장 잘 표현해 내는 유전자를 만들어낸다는 설명이다. “우리는 축구를 즐길 뿐 나머지는 공이 알아서 한다”는 둥가 브라질 대표팀 감독의 말에는 브라질만의 자유롭고 아름다운 축구의 단면이 엿보인다.

브라질 사람들에게 축구는 노예 신분으로 지배계층에 억눌린 울분을 털어내고 짜릿한 쾌감을 얻는 수단이었다. 빈민들이 대다수인 브라질 남자들이 이 나라에서 신분상승할 거의 유일한 통로가 축구다. 그런 까닭에 ‘브라질 사람들에게는 축구가 취미가 아닌 삶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여기에다 자신의 인생은 4년에 한 번씩 절정을 이룬다는 열정적인 축구팬들이 있기에 브라질은 영원한 축구 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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