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돕는 호스피스, 그들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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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생전에 즐거움과 보람을 느껴봤는가. 아니면 당신의 인생이 타인에게 즐거움을 주었는가."

잭 니콜슨과 모건 프리먼 주연의 영화 ‘버킷 리스트’에는 죽은 영혼이 두 가지 질문에 따라 천국과 지옥행이 결정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질문에 자신있게 답할 수 있는 일이 바로 '호스피스' 활동이 아닐까. 호스피스는 시한부 환자들을 돌보며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함께 있어 주는 활동을 말한다. 호스피스 활동을 하는 사람도 '호스피스'라 부른다.

신촌 세브란스병원 김미정 사회복지사는 4년째 호스피스 활동을 하고 있다.

김 씨가 사회복지사와 호스피스를 하게 된 계기는 친언니의 죽음이었다. 언니는 지난 2000년 아기를 출산한 기쁨도 잠시 유방암 진단을 받았고, 항암 치료를 받았다. 1년 후 수술을 했지만 아기가 두 돌을 맞이하기도 전에 2001년 말 죽음을 맞이했다.

언니를 그렇게 보낸 김씨는 사회복지사가 되기로 했다. 김씨는 “그때 환자를 둔 가족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고,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싶어졌다”고 말했다.

2005년 사회복지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김씨는 전문적으로 호스피스 활동을 시작했다. 4년 동안 약 200명의 말기함 환자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했다. 죽음을 편안하게 맞이하는 환자들을 볼 때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로 40대 여성 A씨를 떠올렸다.

A씨는 남편과의 불화로 8살 난 아들을 남겨둔 채 가출했다. 그러나 곧 후두암이 발견됐고 수술을 받았지만 암세포는 몸 전체로 전이됐다. 결국 A씨는 시한부 판정을 받고 호스피스실로 오게 됐다.

A씨는 김씨에게 "아들이 생의 마지막을 지켜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씨는 A씨가 갖고있던 집주소와 전화번호를 가지고 아들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수소문 끝에 찾아낸 아들은 17살이 돼있었고, 소년원에 들어가 있었다.

호스피스 측은 소년원에 가석방 탄원서를 제출했고 며칠 후 탄원서가 받아들여졌다. 어머니와 아들은 9년만에 감격의 상봉을 했다. 그러나 얼마 안돼 아들은 오토바이를 훔친 혐의로 다시 소년원에 들어갔다.

A씨는 호스피스의 도움을 받아 휠체어를 탄 채 소년원으로 면회를 갔다. 불과 몇 달 만에 상태가 급속도로 악화된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은 아들은 "퇴소할 때 까지만 살아있어 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썼다.

그러나 2주 후 A씨의 임종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안 호스피스 측이 다시 아들의 가석방 탄원서를 소년원에 제출했다. 기적적으로 가석방이 또 허용됐고, 결국 A씨는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 아들과 함께 있을 수 있었다.

김미정 씨는 당시의 일을 호스피스 활동을 하며 가장 보람있었던 일로 꼽는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죽음'이라고 하면 저승사자나 귀신 등 부정적이고 어둡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그러나 서양의 경우 죽음을 두렵게 여기기보다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다시 돌아간다는 긍정적 인식이 있다. 우리나라도 바로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적 지원도 절실한 상황이다. 강원도 춘천의 ‘봄내 호스피스’ 최선자 총무부장은“ 아직 우리나라 사회복지법에는 호스피스 관련 법이 제정돼 있지 않다. 사설 호스피스의 경우 후원금으로만 운영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힘든 처지에 놓인 사람들의 마지막을 국가가 보살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준희 대학생 인턴기자 (한림대 디지털콘텐츠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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