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태풍 잦아드니 북풍한파…정국 다시 '빙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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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사정 (司正) 회오리에 이어 이번엔 북풍 (北風) 이 새롭게 몰려와 정국을 강타하고 있다.

신 (新) 북풍은 '적 (敵) 과의 내통혐의 사건' 이라는 점에서 사정 정국과 질적으로 다르다.

권영해 (權寧海) 전 안기부장 주도의 북풍보다 훨씬 구체적 거래 내용이 사실이라면 한나라당의 입지는 아주 어렵게 된다.

당장 여권은 이를 국가전복 음모에 준하는 반 (反) 국가적 사건으로 규정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이회창 총재에 대한 '유치한 정치보복' 이라고 맞받아쳤다.

본격적 '이회창 죽이기' 공작에 불과하다는 단정이다.

그러나 사안 자체가 갖는 폭발성 때문에 한나라당은 검찰 수사방향과 여권 (與圈) 의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추석 연휴와 김대중 대통령 방일 (訪日) 을 계기로 한 정치권 해빙 (解氷) 기운이 사라지면서 정치권은 언제 풀릴지 모를 빙하기에 접어든 느낌이다.

'판문점 총격 요청' 의 최종 주체가 누구로 판명되느냐는 검찰과 안기부의 손에 달려 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신 북풍 정국이 어디까지,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가 가늠될 것이다.

여권 고위 관계자들은 사건의 흐름과 맥을 이미 파악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안기부가 지난 6월 총격 요청 사건을 포착했으며 수사선상에 당시 오정은 청와대 행정관이 떠오르자 청와대측이 吳씨의 사표를 받았다는 것. 박지원 (朴智元) 청와대 대변인은 이때 吳씨를 불러 상황설명을 요구하고 크게 질책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박관용 한나라당 의원이 청와대 비서실장 시절 추천해 93년부터 청와대에서 근무한 吳씨에 대해선 새 정권 들어 '적 (야당) 과 내통하는 청와대 직원' 으로 소문이 나기도 했다.

안기부는 吳씨를 포함, 구속된 3인 등을 통해 '이회창 후보 비선조직' 의 실체를 상당 부분 파헤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검찰은 안기부 조사내용을 확인하고 李총재의 친척으로 알려진 비선조직 관리자, 李총재의 인지 여부를 집중 수사할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핵심들은 결국 수사의 최종 수순이 李총재가 될 것임을 감추지 않으면서 한나라당의 '한성기씨 고문을 통한 허위자백' 주장에도 별로 개의치 않는 표정이다.

따라서 정국은 李총재 소환 여부를 놓고 대격돌로 치달을 전망이다.

李총재가 이 상황을 이겨내지 못할 경우 그의 정국대응 방식을 평가절하하는 비주류나 민주계 의원들의 대거 탈당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가뜩이나 金대통령 주변에서 민주연합론→전국정당 창당의 시나리오가 흘러나오는 마당이어서 신 북풍은 정계개편을 가속화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전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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