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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양자회담 거듭 요구땐 미국도 계속 거부 힘들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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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는 최근 직함이 하나 늘었다. 워싱턴의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한국 관련 연구를 책임지는 초대 ‘코리아 체어(Korea Chair)’ 책임자다. 차 교수는 한반도 전문가들로 구성된 비공개 모임을 이끌고 있다. CSIS 4층 회의실에서 차 교수를 만나 교착 상태에 빠진 북핵 문제 해결의 전망을 들었다.

김영희 대기자(左)가 23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빅터 차 CSIS ‘코리아 체어(Korea Chair·한국문제 전담 프로그램)’ 책임자와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정책에 관해 대담하고 있다. [워싱턴 지사=박성균 기자]


김영희=커트 캠벨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서울에서 “북한이 핵 폐기에 관한 진지하고 불가역적인 조치를 취한다면 미국은 북한이 매력을 느낄 만한 포괄적 패키지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포괄적 패키지가 뭔가.

빅터 차=에너지를 포함한 경제 지원, 북·미 관계 정상화, 평화협정이 포함될 것이다. 그러나 버락 오바마 정부는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에 이르기 전에는 관계 정상화를 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김=북한은 6자회담 재개에는 반대하지만 미국과의 대화에는 반대하지는 않는다는 입장을 거듭 밝힌다. 미국이 6자회담 아닌 북·미 회담에 동의할까.

차=북한이 6자회담은 끝났다고 말한 게 2003년 이후 세 번째다. 수사적 발언이다. 오바마 정부는 우선은 6자회담 재개에 노력을 집중하겠지만 북한이 거듭해 양자회담을 요구하면 미국 정부로서도 계속 그 유혹에 저항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김=북한이 북·미 회담을 요구하게 된 것은 유엔과 미국의 대북 제재의 효과인가.

차=북한이 협상 쪽으로 관심을 돌리는 데는 유엔의 제재 조치가 직접적인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과거 방코델타아시아(BDA)의 경우도 그랬다. 많은 사람이 조지 W 부시 정부 때는 대북 제재가 북한의 핵실험을 야기했고 오바마 정부에선 대북제재가 북한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 아이러니컬한 현상이다. 북한이 협상 선상에 들어선 것처럼 보일 때 쉽게 대북 제재를 풀어서는 안 된다.

김=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를 다룬 ‘D-13’(Thirteen Days)란 영화가 있다. 당시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은 소련 함정에 포격명령을 내리려는 해군작전사령관의 명령을 황급히 중단시킨다. 사령관이 단순한 경고 포격이었다고 항변하자 맥나마라는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은 쿠바에 대한 봉쇄 조치가 아니라 세계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언어로 케네디 대통령과 흐루쇼프가 소통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오바마와 클린턴 국무장관은 대북제재와 강경 발언이라는 독특한 언어로 김정일과 소통하고 있는 것인가.

차=그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번 제재는 수사적인 언어나 신호 이상이다. 쿠바 봉쇄는 일시적인 조치였지만 이번 제재는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부시 정부 때의 제재는 북한에 대한 제재를 국제사회에 요청하는 것이었지만 이번에는 국제사회가 의무적으로 제재에 나서야 한다는 큰 차이가 있다.

김=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는 것이 김정일의 건강 문제나 권력 승계 등 북한 내부적인 요인에서 나왔다는 분석이 있는데 미국의 대응도 그런 상황 인식을 깔고 있는가.

차=미국은 북한 내부 요인이 아니라 그들의 행동에 대해 대응한다. 미국의 입장은 북한에 어떤 정권이 들어서느냐에 상관없이 비핵화에 나선다면 대화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북한의 의도가 아니라 행동에 반응한다.

김=지난 6월 오바마 대통령과 만난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은 북한이 경제적 보상과 관계없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느낀 것 같다.

차=이 대통령이 워싱턴 분위기를 정확하게 읽었다. 많은 사람이 2차 핵실험 이후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런데도 미국이 북한과 협상에 나서려는 것은 북한의 비핵화가 목표이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현 수준에서 핵 개발을 동결시키는 노력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 핵 개발이 진척되는 것보다는 동결이 낫다고 보는 것이다.

김=북한에 억류된 두 명의 여기자 석방을 위해 앨 고어 전 부통령 등이 특사로 거론되고 있다. 여기자 석방이 전반적인 북·미 간 협상이나 북한의 6자회담 복귀로 진전될 가능성이 있을까.

차=협상에 제한은 없으므로 항상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실제론 누가 특사로 가느냐에 달렸다. 고어의 경우 여기자 석방 협상에 집중할 가능성이 크고, 지미 카터와 빌 클린턴이 가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김=한국에서는 한·미 미사일 협정을 고쳐 북한 전역을 미사일 사정거리 안에 두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미국이 동의할까.

차=동의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북한의 군사 능력이 향상되면 될수록 미 국방부 등은 이에 대한 대응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이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김=김정일의 3남 정운의 후계 구도가 연착륙할 것으로 보나.

차=김정운으로의 권력 승계는 매우 어려운 문제다. 북한에는 군부·당·내각, 그리고 김씨 일가를 포함해 4대 파벌이 있다. 독재사회에서도 안정적인 권력 이양에는 시간이 필요한데 김 위원장이 갑자기 유고 상태가 되면 그럴 시간이 없어진다. 역사적으로 그런 상황에서 쿠데타가 일어난 사례가 많았다.

김=김정일의 건강 문제로 북한 상황이 불안정하다. 급변 사태에 대비한 계획은 수립돼 있나.

차=노무현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를 원하지 않았다. 오바마-이명박 정부에선 심도 있는 논의가 있어야 하고 특히 중국과 협의할 필요가 있다. 실현 가능한 계획 수립에는 중국의 부분적 참여가 필요하다.

김=중국과 그런 협의가 진행 중인가.

차=정부 당국자 간 접촉(트랙1)에서는 협의가 없다. 중국이 북한을 의식해 그런 논의에 참여하는 것을 꺼린다. 그러나 학계와 싱크탱크 등 민간 부문(트랙2)에서는 비공식적으로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김=오바마 정부의 대한반도 정책팀은 어떤가.

차=클린턴 장관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하루 단위로 북핵문제를 지휘하는 사람은 제임스 스타인버그 부장관이다. 힐러리-스타인버그-캠벨이 핵심 3인이다. 스타인버그는 매우 지적인 인물로 한·중·일에 관심이 많고, 캠벨은 클린턴과 아주 막역한 사이다. 모두 한·미 동맹을 중시하는 인물들이다.

김=한·미 FTA의 의회 비준 전망은 어떤가.

차=한·미 FTA가 비준될 유일한 방법은 백악관이 주도하는 것이다. 의회는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불행히도 오바마 정부는 미국 내 정당정치 사정으로 주도적으로 나설 것 같지 않다. 한 가지 방법은 한국이 한-EU FTA를 서둘러 체결해 유럽 기업들이 한국에 몰려갈 상황을 만들어 한국 시장을 뺏길 것을 걱정하는 미국 기업들이 의회를 압박하는 것이다.”

정리=김정욱 워싱턴 특파원, 사진=박성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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