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분수대

칼 토마 정착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5면

태조 이성계의 오른팔은 여진족이었다. 퉁두란, 훗날 청해 이씨의 시조가 된 이지란(李之蘭) 장군이다. 두 사람은 무예 겨루기로 맺어진 의형제였다. 태조가 물동이를 철환으로 꿰뚫으면 이 장군이 화살촉에 솜을 끼워 쏘아서 그 구멍을 막았다 한다. 이 장군은 임종 후에도 태조의 묘정(廟庭) 제일 첫 줄에 배향된 ‘공신 중의 공신’이었다. (박기현, 『우리 역사를 바꾼 귀화성씨』)

조선 개국 9공신 중 한 명인 설장수 역시 위구르 출신의 귀화인이다. 중국어와 유학에 능통해 8차례나 사신으로 활동한 외교 전문가였다. 『고려사』 39권에는 중국 후주 사람으로 사신을 따라왔다가 고려 광종의 눈에 들어 귀화한 쌍기라는 인물이 나온다. 고려에 과거제도를 도입한 바로 그 사람이다.

조총을 우리나라에 전한 것도 귀화인이었다. 임진왜란 때 부산에 상륙한 지 일주일 만에 귀순해버린 ‘일본국 선봉장’ 사야가다. ‘오랫동안 조선의 문물을 사모했다’는 그는 김충선으로 개명하고 왜군에게로 총구를 돌렸다. 벼슬이 정2품 정헌대부까지 올랐다.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삼전도의 굴욕을 당했을 때는 ‘어찌 개 같은 오랑캐 앞에 무릎을 굽힌단 말인가’ 하고 통곡했다.

김충선이 임진왜란 때 조총으로 공을 세웠다면 박연은 병자호란 때 대포를 맡았다. 본명은 얀 야너스 벨테브레이, 네덜란드 선원 출신으로 조선에 귀화한 최초의 서양인이다. 그는 함께 탈출하자는 하멜 일행에게 “나와 같이 (훈련)도감 포수를 하자”고 권하기도 했다.

30일 ‘귀화인 공기업 사장 1호’가 탄생했다. 독일 출신의 이참(55) 한국관광공사 사장이다. 그는 이름을 세 번 바꿨다.

1978년 한국에 온 그는 본명 베른하르트 크반트 대신 ‘칼과 도마’를 연상시키는 ‘칼 토마’라는 이름을 썼다. 드라마 ‘딸부잣집’에서도 차령(하유미 분)과의 결혼을 승낙받으려 고군분투하는 청년 ‘칼 토마’를 맡아 차인표와 함께 95년 백상 인기상을 받았다.

귀화 이름을 이한우(李韓佑)에서 이참(李參)으로 바꿀 땐 한국을 돕는 사람에서 한국에 참여하는 참된 한국 사람이 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그리고 이름처럼 됐다.

‘칼 토마 정착기’는 어떻게 끝날까. ‘칼과 도마’로 불리기를 마다하지 않던 독일 청년이 ‘더블 S라인(서울시·소망교회) 글로벌 낙하산’의 우려를 딛고 공기업 혁명을 이룬 ‘독일 이씨’의 시조가 되었다-. 그거 괜찮다.

구희령 정치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