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서울역 사건' 진상 밝혀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29일 한나라당 서울역광장 집회에서 빚어진 폭력.유혈사태는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다.

여야가 첨예하게 감정적으로 대립하면서 가뜩이나 정치가 실종된 마당에 이처럼 불미스러운 일이 또 일어났으니 앞일이 걱정스럽다.

벌써 야당은 '야당탄압을 위한 정치폭력 테러' 라고 흥분하는가 하면 여당은 '집회 실패를 호도하려는 조작극' 이라고 극한용어로 맞서 이 사건이 정치권의 새로운 불씨가 되고 있다.

이 시점에서 가장 중요하고 서둘러야 할 일은 사건의 철저한 진상규명이다.

그러므로 검찰과 경찰이 수뇌부의 지시에 따라 일제히 수사에 착수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마침 한나라당측에서 현장 녹화 테이프를 확보하고 있다니 진상규명이 어렵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집회현장을 돌이켜보면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

우선 간헐적이라고는 하지만 집회방해가 한시간 이상 계속됐는데 현장에 있던 경찰은 도대체 뭘 했는지 의문이다.

외곽에 19개 중대 2천여명이 배치됐고 주최측 요청으로 5백여명은 집회장 안으로 들어가 있었는데 한명도 붙잡지 못했다니 이해가 안간다.

이날 오전부터 집회장 주변에 '노숙자의 집회 방해설' 이 공공연하게 나돌았던 점을 생각하면 '정당집회였기 때문에 깊게 개입 안했다' 는 경찰 해명을 납득하기가 쉽지 않다.

어떤 경우라도 폭력.폭행은 현행범이 아닌가.

폭력에 참여한 인원이 1백~2백명이나 되고 일부는 조직적으로 움직였다는 점도 주목거리다.

특히 리더로 보이는 적극 가담자 몇명은 짧은 머리의 건장한 체구로 노숙자 행색이 아니었다는 목격자도 있으니 이들의 정체를 밝혀내는 것이 초점일 것이다.

우리는 폭력을 동원한 야당집회 방해의 어두운 과거를 갖고 있다.

자유당 시절의 정치깡패 테러나 군사독재 아래서의 용팔이사건 등이 바로 그것이다.

당시 정치폭력사건은 흐지부지 처리돼 정치불신을 가중시키기 일쑤였다.

'서울역 사건' 에 우리가 각별히 신경을 쓰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사건의 진상규명이 늦어지면 집권측에 부담이 된다.

그러므로 하루빨리 관련자를 색출, 처벌해 의혹을 해소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야당도 진실규명에 최대한 협조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야당은 이 사건을 이유로 계획했던 총재의 경제회견을 늦췄다고 하는데 다시 국회등원을 늦추는 등 또 다른 정치투쟁에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야당이 사건을 따지고 책임을 추궁하려면 국회보다 더 나은 장소가 없지 않은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