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도움으로 성공…은혜 갚아야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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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정철씨.

"끼니를 때우기도 어렵던 시절을 견뎌낸 것은 모두 주변 분들 덕분인만큼, 이제는 은혜를 갚을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수성가한 40대 일식집 사장이 가정이 어려운 어린이 환자들을 위해 7년째 거액의 후원금을 내놓아 화제다.

선행의 주인공은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서 일식집 '어도'를 운영 중인 배정철(44)씨.

배씨는 1999년 3000만원을 함춘후원회(서울대병원 직원들의 불우환자돕기 모임)에 쾌척한 것을 시작으로 7년간 6차례에 걸쳐 총 3억3500만원을 기부했다.

전남 장성에서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배씨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어머니 오창래(91)씨와 함께 무작정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다섯살 되던해 아버지가 위암을 돌아가신 뒤로는, 땅 한 평없었던 고향에선 먹고 살 길이 막막했기 때문이다.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서울에서 초등학교만 마친 그는 주변 사람의 소개로 식당들을 돌며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사춘기 때에는 힘든 현실을 원망하며 방황했던 적도 많았지만, 고생하는 어머니를 위해 힘든 생활을 견뎌냈다"고 회상했다.

고된 요리집 조수생활 15년만인 1992년에는 자신의 일식집을 열었다.

건물주에게 임대료도 제대로 치르지 못할 만큼 여유롭지 못했지만, 배씨의 성실함을 눈여겨 본 건물주는 '식당 임대료는 벌어서 갚으라'고 말했다.

배씨는 "남을 돕는 방법도 다른 사람을 보고 배우는 것"이라며 "나를 믿어준 건물주나, 항상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어머니 덕에 남을 돕는 일이 내겐 너무나 당연했다"고 말했다.

어엿한 사장님이 된 그는 우선 가게 주변에 홀로 사는 노인과 장애인들을 불러 음식을 대접했다.

또 언젠가 좋은 일에 쓰기 위해 손님들이 치른 음식 값에서 1000원씩 성금을 모았다.

1999년 8월, 단골손님이던 서울대병원 소아성형외과 김석화 교수에게서 "한 해에 1000여명이 넘는 아이들이 얼굴 기형을 가지고 태어나 평생 고통 속에 살아간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그는 그동안 모은 돈 3000만원을 기부했다.

지금까지 배씨가 기부한 돈은 160여명의 얼굴 기형 어린이들의 치료에 쓰였다.

'아무리 힘들어도 남을 돕기 위해 모은 돈에는 손을 대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는 그는 지금도 점심 손님은 1000원, 저녁 손님은 3000원씩 적립하고 있다.

극심한 경기침체 탓에 은행에서 돈을 융통했던 지난 해에도 이렇게 모은 돈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배씨의 선행은 얼굴 기형 어린이들을 위해 돈을 모으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15년 전부터 매달 한 번씩 인근 7개 노인정 노인들을 식당으로 초청해 점심식사를 대접하고 있다.

또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손수 60 ̄70명 분의 죽을 끓여 지체장애인들과 독거노인들에게 보내고 있다.

이를 위해 배씨는 매일 오전 7시면 출근해 자정이 넘어서야 퇴근하지만, '이웃을 돕는데 쉴 틈이 어디있느냐'는 생각에 일년 365일 중 하루도 쉬지 않는다.

'아이들은 언제보느냐'는 물음에 옆에 있던 부인 김선미(39)씨는 "보긴 뭘봐요"라고 웃으며 눈을 흘겼다.

순수한 마음에서 시작했지만, 남을 돕는 일이 쉽지 만은 않았다.

배씨는 "처음 돈을 기부할때에는 어머니까지 이상하게 보셨었다"면서 "무엇보다 '뭔가 꿍꿍이 속이 있는게 아니냐'는 주변의 시선이 제일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또 "'돈도 되지 않는 일을 무엇때문에 하느냐'며 식당을 그만두는 직원이 많아 고민했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아이들에게서 '아빠처럼 되고 싶다'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큰 뿌듯함을 느꼈다는 그는 모든 것을 이해해준 아내 김선미(39)씨와 직원들에게 감사를 돌렸다.

이수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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