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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밑빠진 독 물붓기' 안돼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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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정부는 28일부터 30일까지 재정자금 21조원을 부실금융기관에 집중투입해 1차 금융구조조정을 마무리한다고 발표했다.

금융구조조정에 쏟아붓는 재정자금은 이미 투입된 14조원을 포함, 내년 상반기까지 64조원에 이른다.

은행들이 가진 부실채권을 사주는데 32조5천억원, 증자를 지원하거나 고객예금을 대신 지급하는데 31조5천억원이 잡혀 있다.

이 돈은 사실상 국민의 세금이고 상당액은 회수된다는 보장이 없다.

64조원을 국민부담으로 따지면 가구당 66만원 꼴이다.

금융구조조정에 필요한 자금은 금융기관 스스로 조달하는 게 원칙이다.

그러나 주식시장의 침체로 재원조달이 어렵고 금융시스템의 불안은 국민경제 전체의 위기로 이어지기 때문에 조속한 정상화를 위한 구조조정에 재정의 뒷받침은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고 본다.

문제는 그 부담이 너무 많다는데 있다.

금융구조조정을 위한 재정부담 사례는 외국에서도 적지 않다.

그러나 부담액은 많아야 국내총생산 (GDP) 의 6~8% 수준이다.

64조원은 97년 GDP의 15.2%에 달한다.

더구나 64조원은 너무 낙관적으로 본 것이고 실제 90조원은 필요하다는 분석도 있다.

막대한 국민부담을 무릅쓰고라도 금융구조조정이 성공을 거둔다면 그런대로 의미는 있다.

정부는 은행들의 국제결제은행 (BIS) 비율이 획기적으로 개선돼 신용경색은 더 이상 없을 것이며 선진은행 수준의 클린뱅크 (Clean Bank)가 속속 등장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러나 은행들이 대출을 늘리는 등 금융경색이 풀렸다는 증거는 찾아볼 수 없다.

국제신인도 또한 제자리 걸음이다.

이달 들어 은행 노사간 대립으로 신용경색은 도리어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러다가 공적자금만 날리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적지 않다.

금융경색은 은행의 보수적인 자금운용 못지 않게 기업의 신용도 하락에도 원인이 있다.

따라서 부실기업의 퇴출 등 기업구조조정과 금융기관 경영개선노력이 맞물려야 근본적인 해소를 기대할 수 있다.

문제는 은행측 자세다.

금융구조조정이 1차 마무리됐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은행의 감자비율이나 경영진 교체 여부, 합병이나 외자도입 방안은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고 있다.

은행 스스로 인원 및 점포축소.고정자산처분 등 경영개선노력이 앞서야 한다.

이 과정에서 노사대립 등 갈등이 잇따르고 있지만 주식이 '휴지쪽' 이 되고, 부실을 국민세금으로 메워주는 마당에 퇴직위로금을 놓고 노사간에 벌이는 극한대립은 국민들에게 설득력이 없다.

금융이 정상화돼야 기업구조조정도 속도를 낼 수 있고 은행을 통한 기업구조조정도 가능해진다.

부실은행들은 막대한 재정지원이 '밑빠진 독에 물붓기' 가 되지 않도록 뼈를 깎는 자구노력을 통해 건전은행으로 거듭날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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