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진의 서핑 차이나] “중국의 대북정책은 일종의 국내정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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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6월25일 조선전쟁이 발발했다. 27일 미국 정부는 조선 내정에 무장 간섭을 선포하고 군대를 파견해 조선에 침입했다. 중국정부의 수 차례 성명과 경고에도 불구하고 중국 동북 변경까지 전선을 확대해 중국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했다. 이에 중국공산당 중앙은 항미원조(抗美援朝), 국가보위 전략을 결정했다. 동북 변방군은 중국인민지원군을 조직하고 펑더화이(彭德懷)를 사령원으로 임명하여 10월19일 압록강을 건너 전선에 투입했다. 조선인민군과 함께 미국침략자에 대항해 싸웠다.

1950년10월부터 1951년6월까지 중국인민지원군은 조선인민군과 함께 다섯 차례의 공세적인 전투를 전개하여 적군을 38도선 부근으로 몰아붙여 전세를 역전시켰다. 정전담판과 조선전쟁 승리를 위한 기초를 닦은 것이다.

미국은 불리한 전세 아래서 1953년7월27일 판문점에서 중국·조선 대표와 ‘조선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에 서명했다. 이로써 3년32일에 걸친 조선전쟁은 끝났다. 중국·조선군대는 모두 적 100여만 명을 섬멸했다. 그 가운데 미군 39만 명이 포함된다. 전투기 1만2200여 대, 적선 257척, 무수한 적군 작전물자를 파괴했다. 이같이 중국인민의 한미원조운동은 승리로 끝났다.

조선전쟁 후, 중국인민지원군은 또한 조선인민의 전후 회복과 건설을 도왔다. 1958년10월 중국인민지원군 전부가 조선을 떠나 조국으로 돌아왔다.

이상은 중국신문사가 최근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60주년을 맞아 선정한 ‘공화국60대사건’ 중 ‘항미원조’ 항목에 대한 설명이다. 동시에 지난 7월1일부터 60개 사건을 대상으로 네티즌에게 중요도를 묻는 투표를 진행하고 있다. 29일 까지 ‘중화인민공화국 성립’이 1위, 2위 ‘중국의 UN합법지위회복’에 이어 ‘항미원조’가 4257표로 3위를 달리고 있다. 이만큼 중국 일반인들에게 항미원조는 미국에 대항해 싸워 이겼다는 자부심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한편, 28일 서초동 한국국제교류재단 대회의실에서 국제교류재단-세종연구소 공동 주최로 '제2차 북핵실험 이후 중국과 북한의 관계'라는 주제의 세미나가 열렸다. 연사는 미국과 동북아정치를 전공하는 주펑(朱鋒) 베이징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 그는 “중국의 대북 정책은 매우 독특하다. 정치적이고 매우 민감하다. 중국의 대북정책은 외교정책이면서 일종의 국내정치다. 한국전 참전 원로들이 여전히 살아있기 때문이다”라며 중국의 대북 정책이 쉽게 바뀔 성질의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

그는 “북한은 여전히 교활하고(tricky), 영리하다(smart). 지난 20년 동안 경험에서 우러나온 생존 기술로 단련돼있다. 경제적 지렛대를 이용해 간여(engage)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단 인도적 지원까지 끊어선 안되며 북한 주민에게 접근할 수 있는 채널은 항상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김정일 정권이 예상과 달리 5년 내지 10년 이상 지속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이에대한 대비책도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북한이 기아나 국제적 압력으로 인해 불안정한 국면이 도래할 수는 있지만 급작스런 붕괴나 새로운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을 적다고 내다봤다. 만일 김정일이 갑작스레 죽더라도 권력이양은 예상외로 순조롭게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유비 사후 제갈량이 후주를 모시고 권력을 이어간 사례를 들었다.

주 교수는 중국의 대북 정책의 주요 목표는 ▶한반도의 평화 유지 ▶김정일 체제 유지 ▶한반도 비핵화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중국은 덜 적대적이고, 관리 가능한 방식으로 북핵 문제를 다뤄나갈 것으로 예상했다. 포스트 김정일 시대의 중국의 역할을 묻는 질문에 그는 “중국의 원칙은 권력승계는 내정문제인 만큼 간여하지 않고, 설사 큰 혼란이 발생하더라도 중국 단독이 아닌 6자회담에 참여해 온 5자와 공동으로 해법을 찾는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최근 환구시보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중국인 과반수가 대북제제에 찬성한 결과가 중국의 대북정책 전환 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냐는 플로어 질문에 대해 그는 “중국의 정책 결정에 중국 내 여론의 영향이 커지고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하지만 모두에 본 바와 같이 중국신문사가 실시하고 있는 ‘공화국 60대 사건’ 여론조사 중간 결과를 보면 중국인들은 여전히 ‘항미원조’를 60년래 3대 중요 사건으로 인식하고 있다. 게다가 그들이 서술한 한국전쟁은 초강대국 미국에 대항하여 물리적으로 승리를 거뒀다고 서술하고 있다. 그들의 한국전쟁 사관을 우리가 동의하기는 어렵다.

중국과 한국은 똑같이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그러나 한국과 중국이 북한을 보는 시각과 정책 목표는 다르다. 한·중이 서로 다름은 인정해야 한다. 그렇지만 격상된 전략적 동반자관계에 걸맞게 대북전략의 공통분모를 찾는 노력 역시 계속돼야 한다. 오바마가 말한 맹자 진심(盡心)장 구절같이 말이다. “산중에 난 좁은 길도 계속 다니면 길이 되고, 다니지 않으면 풀이 우거져 길이 막힌다(山徑之蹊間 介然用之而成路 爲間不用 則茅塞之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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