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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총 탈퇴하니 파업 사라지고 임금 늘어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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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경북 포항의 심팩ANC는 한때 민주노총 금속노조의 핵심이었다. 1997년 12월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다음 해부터 2005년까지 매년 파업을 했다. 2003년에는 56일간 파업했다. 수시로 민주노총의 정치 투쟁이나 다른 노조 파업 지원에 동원됐다.

이랬던 이 회사가 지난해 말 1250% 성과급(1인당 1000여만원+우리사주)을 지급했다. 10년 만이다. 22년 근무한 남호기(48)씨는 “이젠 열심히 일하면 반드시 성과가 돌아온다는 믿음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 회사 최진식 회장은 “올 상반기에 적자가 나자 노조가 앞장서 임금 동결을 제안했다”며 “노조에 빚을 진 만큼 성과가 나면 반드시 과실을 공유하겠다”고 말했다.

심팩ANC의 변신은 민주노총 탈퇴에서 시작됐다. 2001년 파업을 이끌었던 임희석(42) 당시 노조위원장이 2007년 ‘민주노총 탈퇴, 회사 회생’을 공약으로 내걸고 노조위원장에 당선됐고 지난해 1월 조합원 100% 찬성으로 탈퇴했다. 그 전에는 파업과 집회 때문에 조업률이 50%밖에 안 됐으나 지난해 99%로 올라갔다. 때마침 이 회사 제품인 합금철 시세가 오르면서 매출이 1년 만에 2.8배가 됐고 성과급을 지급하게 된 것이다.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을 탈퇴한 뒤 상급단체에 가입하지 않은 ‘독립노조’가 노사관계의 틀을 바꾸고 있다. 본지가 울산NCC·인천지하철공사 등 2004년 이후 노조가 상급단체를 탈퇴한 10여 개 기업을 분석한 결과 이런 변화가 확인됐다. 이들 기업은 상급단체 지시에 따른 정치 투쟁이나 강경 투쟁 대신 대화를, 파업보다 대화나 협력을 중시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생산성이 올라가고 매출이 증가하면서 일부 기업은 임금이 올라가거나 복지가 좋아졌다.

임금 협상 중인 그랜드힐튼호텔 이재은 인사부장은 “업계 최고 수준의 대우를 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호텔은 비정규직 30여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고 연봉을 1500만원에서 1900만원으로 올렸다. 울산NCC는 구내식당·휴게실·목욕탕 등의 시설을 현대식으로 고쳤고 체력단련장을 개조할 예정이다. 택시회사인 군포 서진운수는 적정 인원을 초과하는데도 12명을 더 채용해 직원들의 노동 강도를 줄였다.

상급단체를 탈퇴한 노조들은 독립노조를 고수하고 있다. 노동부에 따르면 2004년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 소속 사업장이 각각 3714개, 1256개에서 지난해 2662개, 538개로 준 반면 독립노조는 1047개에서 1686개로 급증했다.

노동부는 최근 6561개 기업의 2006~2008년 임금인상률이 노조 유형에 따라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조사했다. 그 결과 상급단체가 없는 독립노조는 5.2~6.8% 올라 한국노총(3.9~4.5%)·민주노총(4.5~4.7%) 소속 기업보다 높았다. 노조가 없는 기업은 5.2~5.6%였다. 올해 상반기는 무노조(2%), 한국노총(0.9%), 독립노조(0.8%), 민주노총(0.5%) 순이었다.

독립노조 사업장에서는 노사갈등이 거의 없다. 최근 2년간 민주노총 산하 사업장에서는 연간 100여 건의 노사분규가 발생했다. 올해 상반기에도 38건이었다. 독립노조 사업장에서는 2007년 2건, 지난해 0건, 올해 1건이 발생했다. 파업으로 인한 근로손실일수는 민주노총 소속 사업장에서 2007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136만 일이었다. 독립노조 사업장은 500일 정도였다.

올해 3월 민주노총 탈퇴 도미노에 불을 댕겼던 울산 NCC의 김주석 노조위원장은 “민주노총에 속해 있을 때는 금속노조의 지침에 따라 파업을 하는 날이 많았으나 탈퇴 이후에는 그럴 이유가 없다”며 “지금은 근로조건 개선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민주노총 관계자는 “민주노총 산하에는 대규모 사업장이 많은데 이 사업장들은 지난 10년간 임금이 많이 올라 최근 3년간은 인상률이 낮았다”고 주장했다.

고려대 김동원(경영학과) 교수는 “독립노조나 무노조 사업장의 임금인상률이 높은 이유는 노사가 상생하면 그만큼 성과가 나고 그 성과가 전체 구성원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라 고 말했다.

김기찬·장정훈 기자

알려왔습니다

◆7월 30일자 1면 독립노조 기사 중 그랜드힐튼호텔 이재은 인사부장의 “업계 최고 대우를 고려하고 있다”는 말에 대해 이 부장은 “우리 회사의 임금이 업계 평균보다 낮아 당장 최고 대우는 어렵고, 복리후생을 축소하지 않으면서 직원에게 하나라도 더 챙겨 주려 노력한다는 뜻”이라고 알려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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